• 1989년 초여름의 중국은 뜨거웠다. 중국 공산당 총서기를 역임하던 후야오방의 죽음을 애도하며 시작된 시위의 물결은 부패한 관리들에 대한 분노와 비판으로 이어지더니 급기야 정치적 민주화를 요구하는 급진적인 주장으로 확산되었다. 당시 학생운동 지도부는 주장의 정당성을 호소하고 시위를 전국적인 규모로 확대하기 위한 방안으로 천안문 광장에 모여 단식을 진행할 것을 제안했다.

    학생들로부터 시작된 시위는 이후 노동자와 시민의 결합으로 인해 그 폭발력이 더해졌고 이에 두려움을 느낀 공산당 지도부는 인민해방군을 동원해 시위대를 강제로 진압하는 결정을 내렸다. 결국 6월4일 야경을 틈타 인민해방군의 탱크가 천안문 광장으로 진입하며 전세계를 뜨겁게 달구었던 중국의 민주화 운동은 비극적인 결말로 끝이 나고 말았다.

    천안문광장의 시위를 계기로 보수파의 반격이 거세지며 중국의 개방을 선도하던 개혁적인 지도부는 설 자리를 잃고 말았다. 이 여파로 중국경제는 바닥으로 곤두박질쳤고 반자본주의 이데올로기 투쟁의 악몽이 다시 중국사회를 뒤덮기 시작했다. 천안문사건의 여진은 덩시아오핑이 연해에 위치한 경제특구 지역을 방문하며 중단 없는 개혁의 지속을 외친 후 다시 권력의 중심으로 돌아오는 1992년까지 계속되었다.

    천안문광장에서 지속된 시위는 서구의 학문세계에도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천안문 사건 이후 많은 중국전문가들은 제한된 형태이지만 중국에서 시민시회의 출현을 예견하였다. 특히 무력진압이 시작되기 직전 나타난 독립적인 노동운동 결사체의 모습은 국유기업 개혁의 심화가 가져올 도시 노동자들의 불안정과 맞물려 중국에서 새로운 형태의 노동자 운동을 등장시킬 수도 있다는 조심스러운 견해로 이어졌다.

    하지만 천안문 사건이 발생한지 18주년이 되는 오늘 날 중국사회에서 아직 시민사회가 등장할 조짐은 보이지 않고 있다. 경직된 조직체계를 지니고 있을 것 같은 중국 공산당은 오히려 경제성장에 필요한 제도적 개혁을 진행하고 아래로부터의 변화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탄력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외자유치에 필요한 각종 제도와 법률을 도입하고 새로운 법치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사회불만 세력으로 자리잡을 수 있는 신흥 상공업자들 위해 공산당의 문호를 개방하는 과감한 변화를 선보이고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중국사회의 반응이다. 천안문광장에서 발생한 비극적인 진압행위의 책임조차 규명되고 있지 못한 상황이지만 현재 중국에서 천안문 사건을 추모하거나 이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에 대한 목소리를 찾아보기 힘들다. 천안문 사건 이후의 혼란과 경제적 불안정을 경험한 대다수 중국인에게 당면한 최고의 관심사항은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통한 생활의 개선과 부의 증가이다.

    현재 대학에 재학중인 학생들도 정치적 민주화에 대한 요구보다 서구세계의 견제를 극복하고 지속적인 경제발전을 이루고 있는 중국 정부에 대해 지지를 표명하고 있다. 이는 좌절된 천안문 광장에서의 민주화 운동이 중국의 성장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작용해서는 안 된다는 암묵적 동의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천안문 사건과 비교될 수 있는 한국의 경험으로 1980년 5월 광주에서 발생한 민주화 운동을 들 수 있다. 박정희의 장기집권 체제가 무너진 이후 권력을 장악한 신군부에 맞서 발생한 정치적 사건이 광주 민주화 운동이다. 하지만 천안문 사건과 달리 광주 민주화 운동은 오랫동안 한국 민주화의 추동력으로 작용해왔다. 그 결과 군부대 동원에 책임이 있는 2명의 전직 대통령과 당시 지휘체계에 있던 군부의 실세들이 모두 실형을 선고 받았다. 아쉬우나마 당시 피해자들에 대한 피해보상이 이루어졌고 추모비와 기념공원 건립을 통해 명예회복도 이루어졌다.

    하지만 중국과 한국을 비교할 때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비슷한 사건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권위주의 정권이 통치하고 있는 중국의 국민들은 과거사에 얽매이기 보다 미래의 희망을 발견하기 위해 노력하는 반면 민주화가 이루어진 한국에서는 아직도 27년 전의 사건이 가장 중요한 정치적 화두로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3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면서 1980년의 비극적인 상황에서 태어났던 세대가 이미 어엿한 사회인으로 성장하였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경험하고 자란 이들에게 현재의 정치구도를 민주와 반민주 혹은 독재와 반독재의 낡은 패러다임으로 구분하는 것이 무슨 설득력이 있을지 의문스럽다. 정치인들은 이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당리당략에 이용되는 과거의 광주가 아니라 미래의 안정을 제공해줄 실질적인 대안의 제시에 있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객원칼럼니스트의 칼럼내용은 뉴데일리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