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 "JTBC 기자에게 '사무실 문' 열어준 사람은 정의당 당원"
  • 겸손하고 자중합시다. 단독보도들은 사람들을 속시원하게 하는 면도 있지만 동시에 깊이를 알 수 없는 자괴감에 빠지게도 하는 내용들입니다. 우리는 이미 'JTBC맨'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므로 손해볼 것이 없습니다.


    손석희 JTBC 보도담당 사장은 지난 10월 25일 JTBC 사내 기자들에게 "단독보도를 했다는 사실에 자만하지 말고 더욱 겸손하고 자중하자"는 취지의 전체 메일을 보냈다. '초심을 잃지 말자'는 일종의 당부성 메시지였으나, 문장 곳곳에선 '우리가 최순실 게이트 보도를 선도하고 있다'는 강한 자부심이 읽혀졌다.

    사원들에 대한 손 사장의 이례적인 당부는 일견 수긍이 가는 측면이 있다. JTBC가 10월 19일 "최순실이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문을 수정했다"는 고영태의 증언을 단독 보도하고, 10월 24일 더블루K(최순실의 개인 사업체) 사무실에서 발견된 PC에 각종 청와대 기밀 자료들이 저장돼 있었다는 사실을 보도하면서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가 전면에 부상하는 단초가 마련됐기 때문. 특히 침묵을 지키던 박근혜 대통령이 JTBC의 보도 다음날(10월 25일)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는 것은 그만큼 관련 기사가 당사자의 '폐부'를 찔렀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 고영태 "JTBC 기자가 'PC 입수 경위' 밝혀야" 역공

    그런데 지난 7일 최순실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고영태(더블루K 전 이사)가 국회 청문회에서 "최순실이 컴퓨터를 하는 것은 봤지만 태블릿PC를 사용하는 것은 본 적이 없다"며 보도의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발언을 하면서, 일종의 '성역(聖域)'처럼 여겨지던 JTBC 보도가 '어쩌면'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여론이 조성되기 시작했다.

    이날 고영태는 "처음엔 독일의 쓰레기통을 뒤져서 찾았다고 했는데 그 다음 기사에서는 최씨 사무실 관리인이 알려줘서 찾았다고 하는 등 '태블릿 PC의 입수 경위'가 계속해서 바뀌고 있는 점이 수상쩍다"며 "태블릿PC를 갖게 된 기자분이 진실을 밝혀주셔야 한다"고 JTBC 측에 역공을 취하는 모습을 보였다.

    처음 태블릿PC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는 JTBC에서 독일의 쓰레기통을 뒤져 찾았다고 했는데 그 다음 기사에선 최순실 씨 사무실 관리인이 알려줘서 찾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엔 저희 회사 책상에 있었다고 와전이 된 걸로 압니다. 저와는 전혀 무관합니다. 만일 제 것이었다면 바보처럼 사무실에 그냥 놔두지는 않았을 겁니다.


    특히 고영태는 "자꾸 말을 바꾸는 그 기자분이 나와주셔서 알려주셔야 한다"며 "저에게 연락을 받았다는 그 분도 나와주셔서 제 전화가 맞는지 제 음성이 맞는지 그걸 명확하게 확인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실시간으로 전국민에게 생중계되는 청문회 자리에 나와, 'JTBC 보도에 하자가 있을 수 있다'는 파격적인 주장을 늘어놓은 것.

    "최순실은 애당초 태블릿PC를 다룰 만한 능력이 없는 사람이고, 자신은 JTBC 기자와 통화조차 한 사실이 없다"는 고영태의 증언이 공개되자, "사실 JTBC 보도 자체에 미심쩍은 부분들이 많았다"며 뒤늦게 양심고백(?)을 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 JTBC "누군가 준 게 아니라 발견한 것"

    논란이 커지자 JTBC는 이튿날 뉴스룸 방송을 통해 "현재 일부 정치인과 일부 극우사이트 이용자들을 중심으로 태블릿PC를 누군가 의도적으로 JTBC에게 줬다는 의혹이 퍼지고 있다"면서 "이 태블릿 PC를 어떻게 입수했는지 또 어떤 검증 과정을 거쳤는지를 자세하게 설명해 드리겠다"고 해명했다.

    누군가 줬다는 건 정말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이는 아마도 저희 보도에 정치적인 배경을 연결시키려고 하는 의도가 있는 걸로 보이는데요. 처음 태블릿을 발견한 건 지난 10월 18일이었습니다.


    "첫 보도(10월 24일)를 하기 엿새 전, 서울 신사동의 더블루K 사무실에서 처음 태블릿PC를 발견했다"고 주장한 심OO 기자는 "당시 최순실의 독일법인인 비덱스포츠와 고영태가 등기이사로 이름을 올렸던 더블루K의 주소지가 같다는 점을 확인하고, 더블루K가 (이번 사태의)핵심일 것이라는 판단을 내렸다"고 밝혔다.

    이에 "강남에 있는 더블루K 사무실로 향했지만 이미 그곳은 이사를 가고 텅 비어 있는 상태였다"며 "책상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고 심 기자는 밝혔다.

    심 기자는 "건물 관리인의 허가를 받고 빈 사무실에 들어가 보니, 최 씨와 고 씨가 황급히 떠나면서 놓고 간 집기와 자료들이 있었고 책상에는 태블릿 PC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책상에는 각종 문서도 있었습니다. 월세계약서도 있었고 사업자등록증이 있었고 이런 해외 각종 협회들과 맺은 계약서들이 있어서 제가 독일에서 이것들을 근거로 좀 현장을 찾을 수가 있었습니다.


    심 기자는 "고영태가 청문회에서 '그런 중요한 게 있다면 버렸을 리가 없다'며 태블릿 PC의 존재를 부인했다"는 손석희 사장의 지적에, "PC 주인이 밝혀야 할 부분이겠지만 현재 검찰은 태블릿 PC를 최순실 씨가 2012년부터 14년까지 쓴 걸로 보고 있다"며 검찰 수사에서도 태블릿PC의 '주인'을 최순실로 단정짓고 있음을 강조했다.

    심 기자는 "발견한 태블릿PC는 단종된 갤럭시탭 초기 모델이었는데 오래 쓰지 않아 전원이 꺼진 상태였다"며 "요즘 사용하는 휴대전화 충전기로는 쓸 수가 없어 전문센터에서 이 모델에 맞는 충전기를 사야 했다"고 밝혔다.

    심 기자는 "태블릿PC를 켰을 때 볼 수 있었던 파일은 6가지 종류에 불과했는데 (시간 관계상)일단 거기까지만 취재를 하고, 태블릿PC는 책상에 두고 나왔다"면서 "이후 JTBC 내부 회의 결과 '태블릿PC를 가져와 복사를 한 뒤 검찰에 제출하자'는 결론이 나와 이틀 뒤(20일) 태블릿PC를 사무실로 가져와 정밀분석에 들어갔다"고 주장했다.

    그 결과 엄청난 분량의 최순실 씨 국정개입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겁니다. 저희는 이에 대한 보도 계획을 세웠고 당초 계획했던 대로 보도 당일인 24일 검찰에 태블릿PC를 제출했습니다.


    ◇ "최순실이 하도 많이 고쳐 화면이 빨갛게 보일 정도"

    심 기자는 자신과 통화를 한 적도 없다는 고영태의 주장에 대해서도 반격을 날렸다. 10월 5일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과 함께 고영태와 식사를 하면서 '2시간 정도' 대화를 나눴다는 사실을 폭로한 것.

    그 당시 상황을, 5일에 만났던 상황을 다시 말씀드리면 고영태 씨와 이성한 씨, 저… 셋이서 식사를 하면서 한 2시간 정도 대화를 나눈 자리였습니다. 고영태 씨가 "최순실 씨가 탭을 끼고 다니면서 수시로 대통령의 연설문을 읽고 수정한다"라는 말을 했고, 이성한 씨가 이를 부연했습니다. 충격적인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두 사람이 나눴던 건데요. 고 씨는 분명히 저와 있었던 그 자리에서 최순실이 태블릿PC 수정과 관련해서 말을 하면서 최순실이 하도 많이 고쳐서 화면이 빨갛게 보일 지경이라는 표현도 했었습니다.


    심 기자는 10월 5일 "최순실이 대통령의 연설문을 (사전에)읽고 수정한다"는 고영태와 이성한의 말을 듣고도 반신반의하다, 10월 18일 문제의 '태블릿PC'를 발견하면서 이같은 주장을 타전하게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JTBC의 반박 보도가 모두 사실이라면 고영태는 전국민이 보는 앞에서 '대국민 거짓말'을 한 셈이다. 고영태는 10월 초 심 기자와 만나 2시간 가량 대화까지 나눴음에도 불구, 청문회장에 나와선 "통화조차 한 사실이 없다"고 관련 보도를 부인하는 모습을 보였다. "최순실은 태블릿PC를 사용할 줄 모를 것"이라는 주장도, 보도상에 나온 "최순실이 수시로 대통령의 연설문을 (태블릿PC로)읽고 수정했다" "하도 많이 고쳐서 화면이 빨갛게 보일 지경"이라는 자신의 발언과 상충되는 대목이다.

    ◇ 경향신문·한겨레 "사무실 문 닫혀 있었다"

    상식적으로 볼 때 '발언 날짜'와 '동석자'가 구체적으로 명시된 심 기자의 기사는 진실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보도 이튿날 박근혜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문에서 "최순실이 일부 연설문을 수정한 적이 있다"고 실토한 점도 해당 보도의 신빙성을 높이는 부분이다.

    하지만 JTBC 보도가 '무조건 옳다'고 단정짓긴 이르다. JTBC 뉴스룸은 8일자 방송에서 "당시 건물 관리인이 '다른 언론사에서 찾아온 기자가 1명도 없었다'고 말했고, 최순실이 해당 사무실을 떠날 때 문을 열어두고 간 상태라 아무나 드나들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밝혔으나, 경향신문 등 일부 일간지는 "그날 JTBC 취재진만 더블루K 사무실을 찾아갔던 게 아니고, 더욱이 사무실에 도착했을 땐 출입문이 잠겨 있는 상태였다"는 상반된 주장을 폈다.

    10월 18일 더블루K 사무실을 찾아갔던 경향신문 취재진은 "사무실은 텅 빈 상태로 잠겨 있었고, 책상 의자 컴퓨터 등 사무실 집기는 물론 서류 한 장 남아 있지 않았었다"고 밝혔다. 같은날 사무실을 방문한 한겨레신문 취재진도 "문이 잠겨 있었다"는 입장을 밝혔고, 이튿날 사무실에 당도한 국민일보와 포커스뉴스 취재진도 "사무실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그런데 국민일보와 포커스뉴스 취재진은 "사무실 안에 책상은 물론 서류 한 장도 없었다"던 경향신문과는 달리, "문은 잠겨 있었지만, 안에 '원목 책상'이 놓여 있었다"고 주장해 의문을 증폭시켰다.

    결국 JTBC 기자가 갔을 때에만 사무실 문이 열려 있었고, 문제의 책상과 태블릿PC가 '친절하게' 놓여 있었다는 얘기.

    더블루K 사무실의 출입문은 18일 오후 1시경 경향신문 취재진이 도착했을 때에도 잠겨 있었고, 이튿날 여타 일간지 기자들이 갔을 때에도 굳게 잠겨 있었다.

    만약 JTBC 취재진이 18일 새벽이나 오전에 사무실을 방문했고, 외부인의 방문을 눈치챈 건물 관리인이 뒤늦게 문을 걸어 잠근 것이라면, 경향신문 기자들이 오후 1시경 사무실을 찾아갔을 때 문이 잠겨 있었다는 논리가 가능해진다.

    ◇ 태블릿PC용 배터리, 당일 오후 3시 반에 구입

    그러나 JTBC는 지난 8일 소셜라이브를 통해 10월 18일 오후 태블릿PC용 배터리를 구입했다는 영수증을 공개해 논란의 불씨를 키웠다. 영수증에 찍힌 구입 시각은 오후 3시 28분. 심 기자는 이날 배터리를 사들고, 다시 더블루K 사무실에 들어가 오랫동안 잠자고 있던 태블릿PC를 켰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심 기자는 오후 1시경 경향신문 기자들이 '문이 잠겨' 허탕을 치고 돌아간지 수시간 만에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 '열린 문'을 통해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는 얘기가 된다. 오후 1시엔 굳게 잠겨 있었던 사무실 문이 오후 3시 이후에 다시 열렸다? 이는 JTBC 취재진의 '출입'을 돕는 누군가가 존재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또한 당초 "사무실 안에 아무 것도 없었다"고 보도해 논란을 부추겼던 경향신문은 수일 뒤 "우리가 착각한 것 같다"는 입장을 내놨다. 당시 사무실 안을 촬영한 사진을 자세히 살펴보니 JTBC가 언급한 원목 책상이 놓여 있었다는 것.

    하지만 경향신문은 "당시 사무실 문이 잠겨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며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상태였다"는 JTBC의 보도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이 부분에서 "최순실이 이 사무실을 떠날 때 문을 열어두고 간 상태였고, 아무나 드나들 수 있는 상황이었다"는 JTBC의 보도는, 사실에서 완전히 벗어났거나 일부만 사실일 가능성을 띠게 된다

    JTBC는 소셜라이브에서 10월 18일 더블루K 사무실을 '첫 방문'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PC 전원을 켜기 위해 외부로 나가 전용 충전기를 구입했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 부팅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이른 아침과 오후, JTBC 기자가 '자유롭게' 사무실을 드나드는 동안, 경향신문 기자들은 사무실 문 앞까지 와서 굳게 닫힌 문만 바라보다 속절없이 돌아가는 낭패를 겪었다. 이는 건물 관리인이 '선별적으로' 문을 열어줬다고 밖에는 해석할 수 없는 부분이다.

    ◇ 문 열어준 건물관리인은 정의당 당원?

    실제로 더블루K의 건물 관리인은 JTBC 뉴스룸과의 인터뷰에서 "원목 책상도 비어 있는 줄 알았는데, 기자 정신이 있으니까 저랑 같이 가서 본 게 아니냐"며 취재 당시 자신이 적극적으로 협조를 했었다는 사실을 시인한 바 있다.

    건물 관리인이 JTBC를 도왔다는 사실은 지난 8일 방송된 팟캐스트 '노유진'에서도 공개됐다. 이날 방송에 출연한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와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JTBC 기자에게 문을 열어준 사람이 바로 정의당 당원"이라며 JTBC가 유일하게 믿을 언론사이기 때문에 그 건물 관리인이 '유일하게' 문을 열어준 것이라고 밝혔다.

    JTBC의 사무실 출입을 건물 관리인이 도왔다는 사실에 주목하는 이유는 이 건물 관리인이 '태블릿PC'의 입수 과정에도 관여했을 수 있음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이 '태블릿PC'가 더블루K 사무실의 누군가로부터 JTBC 취재진에게 전해지기까지 '제 3자'가 관여했는지의 여부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다. 만약 중간 과정에 누군가 개입했을 경우 PC의 원본이 훼손되거나 상당 부분 수정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JTBC 보도의 순수성 자체도 의심받는 상황이 초래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초 JTBC는 최순실로 추정되는 '사무실 주인'이 이사간 이후 사실상 방치돼 있는 사무실을 찾아가 그동안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던 '태블릿PC'를 발견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태블릿PC가 원본 그대로 깨끗하다는 점과 함께 누군가 고의로 PC를 갖다 놓은 게 아님을 강조한 대목.

    JTBC는 건물 관리인의 입회 하에 사무실을 들어갔다고 말하면서도 "문이 열린 상태였다"는 점을 거듭 강조, 해당 PC를 '우연히' 발견한 것이라는 뉘앙스를 짙게 풍겼다.

    하지만 건물 관리인이 정의당 당원이었고 JTBC 취재진에게만 출입을 허용했다는 점에서 '태블릿PC'의 발견이 결코 우연이 아닐 수 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게 됐다.

    ◇ JTBC 취재진, 새벽에 사무실 들렀다 오후 늦게 복귀?

    JTBC 취재진이 10월 18일 '새벽 무렵' 더블루K 사무실을 찾아갔다는 점도 곱씹어 볼만한 부분이다. 태블릿PC가 방전된 것을 확인한 취재진은 밖으로 나가 '전용 충전기'를 구입한 후 다시 사무실로 복귀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데 취재진이 충전기를 구입한 시각은 오후 3시 28분이었다. 새벽 무렵 사무실을 떠난 취재진이 오후 3시 반에 충전기를 사고 사무실로 들어왔다는 얘기.

    JTBC 말대로라면 최순실의 국정개입을 입증할 수도 있는 '결정적인 물증'을 발견한 취재진이 현장을 방치한 상태로 나가 점심 시간을 훌쩍 넘긴, 오후 늦게서야 돌아와 자료를 확인했다는 소리다.

    삼성노트북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곳에서 '구형 충전기'를 사오는 일이 반나절 이상 걸릴 만한 일인가? 이 점에서 일부 네티즌은 JTBC의 '새벽 방문설'이 사실과 다를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취재진이 자료의 '보존성'을 강조하기 위해 태블릿PC가 외부에 유출되기 전, 자신들이 가장 먼저 발견했다고 주장했을 것이라는 논리다.

    ◇ 처음엔 "짐 속에서 발견"..나중엔 "책상에서 발견"

    JTBC가 10월 24일 "'최순실 PC 파일'을 입수했다"며 "최순실이 대통령의 연설문을 사전에 받아봤다"고 주장한 단독 보도에서도 석연치 않은 부분을 찾아볼 수 있다.

    이날 JTBC 뉴스룸은 취재진이 단독입수한 'PC 모니터 화면'을 띄운 뒤 "최순실의 여러 사무 공간 중 한 곳에서 최씨가 건물 관리인에게 처분해달라고 부탁한 짐 속에서 해당 PC를 발견했다"고 보도했다.

    분명히 JTBC는 사무실 주인이 이사를 가면서 버린 짐 속에서 문제의 PC를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고영태의 국정감사 발언 이후 보도된 방송에서 JTBC는 "사무실에 덩그러니 놓인 책상에서 '태블릿PC'를 발견했다"고 전혀 다른 소리를 했다.

    최 씨가 사무실을 정리하고 두고 간 짐 들 가운데 바로 처분되거나 유실될 수 있는 것들을 살펴 보던 중 PC를 발견했고, 그 속에서 관련 자료를 발견하게 됐습니다.


    '두고 간 짐들 속에서 PC를 찾았다'는 말과 '버려둔 책상에서 PC를 발견했다'는 말은 하늘과 땅 차이다. 애당초 책상 서랍에서 태블릿PC를 발견한 게 사실이라면, 왜 최초 보도에선 '짐 속에서 발견했다'는 표현을 쓴 걸까?

    ◇ 뉴스 화면에 나온 모니터 그림은 '데스크톱 PC'

    의문점은 또 있다. 이날 뉴스룸은 "PC안에 저장돼 있는 파일 안에서 최순실이 대통령의 연설문을 미리 받아봤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증거 자료로 PC 모니터 화면을 공개했다.

    하지만 이 화면은 JTBC가 입수했다는 PC 모니터 화면이 아니었다. 방송에 나온 화면을 확대해 살펴본 결과 이는 'JTBC 취재진'의 '데스크톱PC' 모니터 화면이었다. 

    실제로 해당 화면에는 상위 폴더명에 '뉴스제작부 공용', 'JTBC 취재모음', '최순실 파일' 같은 이름들이 나열돼 있었다. 이는 태블릿PC에 있던 '파일 복사본'을 옮겨놓은 JTBC 취재진의 PC 모니터를 촬영한 것으로 추정된다.

    공개할 대상이 태블릿PC인데 JTBC는 정작 입수한 PC는 제쳐두고 자사 취재진의 데스크톱PC 모니터를 자료 화면으로 띄우는 이해할 수 없는 행보를 보였다. 이날 뉴스룸은 자사 기자의 PC 모니터를 공개하면서도 이 사실은 언급하지 않은 채 "취재팀이 최순실의 컴퓨터 파일을 입수해 분석했다"는 점만 누차 강조했다.

    ◇ 자신과 동행한 사람이 태블릿PC를 썼다고 둘러댄다면?

    손OO JTBC 기자가 지난달 25일 민언련 선정 '2016년 10월 이달의 좋은 보도' 시상식에서 "태블릿PC 내용 분석에 일주일 넘게 걸렸다"고 말한 대목도 향후 태블릿PC의 증거능력을 둘러싼 법정 공방에서 도마 위에 오를 수 있다.

    물론 손 기자가 말한 '일주일'은 실제로 7일이 소요됐다는 뜻이 아니라, 태블릿PC를 가져온 20일부터 보도 당일(24일 오후)까지 5일간 전력을 다해 분석했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하지만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일주일 넘게 걸렸다'는 말과 '5일'은 분명 다른 의미다. 궁지에 몰린 당사자 입장에선 얼마든지 꼬투리로 잡을 수 있는 대목이다.

    태블릿PC를 실제로 개통한 사람이 김한수 전 행정관이고, 김 행정관이 2012년 6월부터 2014년 3월까지 PC 요금을 납부한 당사자라는 점도 검찰에겐 불리한 요소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검찰은 최순실의 이동 경로와 태블릿PC의 위치 정보가 동일한 점을 내세워 태블릿PC의 실소유자가 최순실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최순실이 독일에 갈 때나 제주도를 방문했을 때에 태블릿PC를 사용한 기록이 포착됐다고 해도 이를 최순실이 사용했다는 '확증'으로 내세울 수는 없다. 최순실 입장에선 자신과 동행한 누군가가 해당 PC를 사용했다고 둘러대면 그만이다.

    ◇ '본말전도' 막으려면 한 치의 의혹도 있어선 안돼

    이번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서 유력한 증거물로 제시된 태블릿PC의 '실소유자'가 누구냐는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이 모든 의혹이 해당 PC가 최순실의 것이라는 가정에서 비롯된 만큼,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능력 입증'은 최순실의 혐의를 가리는데 있어 필수적이다.

    물론 최순실 일가가 특정 인사에 개입하고 다수의 국책 사업을 쥐고 흔들었다는 사실은 다른 정황 증거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국가 기밀이 가득 들어 있는 해당 PC의 실소유자가 '최순실'이라는 점이 밝혀진다면, 기밀 유출을 도운 청와대 보좌진들을 '공무상 비밀누설죄' 등으로 처벌할 수 있고,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이 지극히 비정상적이었음을 입증하는 중요한 증거가 될 수도 있다.

    현재 최순실의 변호인은 JTBC가 문제의 태블릿PC를 '적법하게' 입수했는지 여부를 집중적으로 파고들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만에 하나, 입수 과정에 불법적인 요소가 개입된 정황이 드러난다면 태블릿PC의 '증거능력'은 소멸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해당 PC의 증거능력을 확보하기 위해선 이를 단독 입수한 JTBC의 추가적 해명이 불가피한 상황으로 보인다.

    태블릿PC에 대한 의혹이 증폭되는 것은 여권이나 야권 모두에게 환영 받지 못할 소식이다. 야권 입장에선 최순실 사태의 본질을 흐리는 암초가 될 수 있고, '꼬리 자르기'에 나선 여권 입장에서도 대통령이나 최순실에게 변명의 여지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을 게 없다.

    일부 우파진영에선 JTBC의 태블릿PC 보도를 이미 조작 사건으로 간주하는 모습이다. 실제로 해당 보도를 진두지휘한 손석희 사장과 기자들을 '내란죄'로 고발하겠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본말이 전도되지 않고 사태의 본질이 흐려지지 않도록, 관련 의혹에 대한 전면적인 해명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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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 제공 = JTBC 뉴스룸 방송 화면 캡처 / 미디어워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