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극기 집회 참여기: 세종로의 南北대치는 內戰의 예고편인가?(1)

    태극기 집회에 참석할 때마다 느끼는 첫 인상은 사람들의 인상이 밝다는 점이다. 이들을 거리로 끌어낸 시국(時局)은 갑갑한데 표정은 왜 다른가? 행동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익(私益)을 위한 행동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한 행동이다.

    세종로엔 휴전선을 닮은 대치선이 형성되었다. 경찰은 세종로 4거리와 프레스 센터 사이를 비무장 지대로 설정, 양쪽을 차단하였다. 묘하게도 남북 대결이었다. 세종로 4거리 북쪽 광화문 광장에선 촛불시위대가 사드배치 반대, 개성공단 및 금강산 관광 재개를 외치고 있었다. 프레스 센터 남쪽 태극기 집회장에선 사드 배치 반대자들을 반역자로 규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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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趙甲濟(조갑제닷컴 대표)

     

    왜 밝은가? 

    태극기 집회에 참석할 때마다 느끼는 첫 인상은 사람들의 인상이 밝다는 점이다. 이들을 거리로 끌어낸 시국(時局)은 갑갑한데 표정은 왜 다른가? 행동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익(私益)을 위한 행동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한 행동이다. 그 다른 사람은 박근혜(朴槿惠)나 대한민국이다(박 대통령은 싫지만 대한민국을 위해서 나온다는 이들도 많다). 자신이 아닌 이웃을 위하여 행동하기란 쉽지 않지만 그런 행동은 정신건강에 좋다. 월남전의 승장(勝將)인 지압 장군을 생전(生前)에 만났는데 그는 건강 비결로 두 가지를 들었다. 매일 맨손체조를 하는 것, 그리고 늘 남을 생각하는 것.

    나는 지난 12월부터 태극기 집회에 참석, 연설도 하고 행진도 한다. 전국을 돌아다닌다. 기분이 좋다. 태극기를 흔들면서 환호하는 대군중을 내려다보면서 연설하는 기분은 끝내준다. 나는 태극기 집회에서 유행하는 구호를 세 개 만들었다.

    “(태극기로) 뭉치자, (조직으로) 싸우자, (헌법으로) 이기자!”

    “대한민국 좋은 나라, 김정은은 나쁜 놈, 편드는 자는 더 나쁜 놈, 미국은 영원한 친구!”

    “촛불로 망치는 나라, 태극기로 살리자!”

    태극기 집회가 규탄장의 성격이지만 유쾌한 가장 큰 이유는 태극기이다. 영하 10도의 눈내리는 대한문 앞의 밤에 수만 명 군중이 함성을 지르면서 흔드는 태극기 물결을 마주하면서 연설하는 것은 황홀한 체험이었다. 나는 “여러분과 함께 평생 잊지 못할 최고의 순간을 함께 보내고 있다”고 했다. “아, 지금이 인생 최고의 순간이구나”라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태극기가 이렇게 아름답게 느껴진 적은 일찍이 없었다고 말한다.

    태극기를 들었다는 자신감이 집회 분위기를 휩싼다.

    “대한민국이 망하지 않는 한 태극기는 내려질 수 없습니다. 진실, 정의, 자유를 상징하는 태극기는 성조기나 삼색기와 통하는 세계의 깃발입니다. 태극기를 든 우리는 애국시민일 뿐 아니라 세계시민입니다. 우리가 최고입니다.”

     

    “아, 역사는 이렇게 만들어지는구나”  

    태극기 시위의 분위기는 어느 도시이든 어머니와 아줌마들이 주도한다. 왜 태극기 집회에 여성 참여자들이 많은지는 연구 대상이 될 것 같다. 여성 대통령이 언론 검찰 정당으로부터 너무 당하는 데 대한 직감적(直感的)인 동정심이나 모성애(母性愛)일지 모르겠다. 집회장을 울리는 여성 특유의 청아하고 날카로운 목소리, 행진곡이나 군가에 맞춘 적극적인 몸놀림, 그리고 먹을 것들을 가지고 다니면서 나눠준다. 사탕, 커피, 피로회복제를 매는 가방에 넣고 다닌다. 나라사랑이 자연스럽게 부(富)의 공유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들이 유쾌한 또 다른 이유는 분노의 동지적 공유(共有)일 것이다. 가장 큰 분노는 언론으로 향한다. ‘기획폭로, 마녀사냥, 인민재판, 촛불선동, 졸속탄핵’으로 이어진 과정에서 언론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고 하여 ‘언론의 난(亂)’이라 한다. 여기에 대응하여 ‘국민각성, 국민행동, 국민저항’으로 나타난 것이 태극기 집회이다. 문명국가에선 보기 힘든 ‘對언론저항운동’이다. 박 대통령에 대한 동정심, 언론의 선동에 대한 저항, 공동체에 대한 애정을 한 덩어리로 만드는 태극기 집회는 “아, 역사는 이렇게 만들어지는구나”하는 현장감을 준다. 딘 애치슨 미 국무장관인 쓴 회고록(퓰리처 상 받음)의 제목은 ‘만들어지는 현재(Present at the Creation)'이었는데 태극기 집회는 ’만들어지는 역사(History at the Creation)'쯤 되지 않을까?

     

    한국 정치의 力學 공식을 바꿀 것

     

    태극기 집회는 한국 정치의 역학(力學)공식을 항구적으로 바꿀 것이다. 나는 보수와 우파를 구별하여 쓴다. ‘이념무장이 되어 행동하는 보수’를 ‘우파’라고 부른다. 한국 보수의 우파화(右派化)는 2003년 3월1일의 ‘반핵반김(反核反金) 국민대회’가 서울시청 광장에서 대군중을 모은 것이 중요한 계기였다. 개신교(改新敎)와 안보단체가 좌파정권의 연속 등장에 대한 위기감을 불러일으키고 일반 시민들이 호응하였다. 그 직후 대령연합회를 모체(母體)로 한 국민행동본부가 등장, 직설적인 의견광고와 거리투쟁을 통하여 친북세력에 대한 이념투쟁을 선도(先導)하면서 ‘아스팔트 우파’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침묵하는 다수는 필요 없다. 행동하는 다수라야 역사를 바꾼다”, “사랑은 지갑과 손발로 표현됩니다”라는 구호는 일반 시민들의 후원금에 의존하는 독립적 우파 단체를 탄생시켰다. 이런 우파 운동을 높게 평가한 사람은 노무현 대통령 시절의 비서실장이었다. 그는 이명박 정부의 등장에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으로 ‘양갑(兩甲)’을 들었다.

    이번 태극기 집회는 규모와 성격 면에서 과거의 우파 운동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90% 이상이 자발적 참여자들이다. 박사모를 핵심으로 하는 탄기국, 박 대통령에 대한 ‘비판적 지지’ 입장인 새로운 한국을 위한 국민운동이 2016년 11월 초부터 시위를 주도하면서 커지게 되었는데 12월9일 국회의 탄핵 소추 의결 직후 참여자가 폭발적으로 늘어 年末부터는 촛불시위를 누르기 시작하였다.

    기독교인들과 여성참여자들이 대거 모여들면서 과거 우파 집회와는 다른 활력을 갖게 되었다. 태극기 집회가 커지는 데 위기감을 느낀 야당과 좌파세력은 2월11일 문재인 전 대표의 지휘 하에 총동원령을 내렸는데 이에 자극을 받은 우파가 더 큰 태극기 집회를 만들었다.

    나는 “촛불집회를 주도하는 민노총은 60만, 한국의 기독교인들인 1500만이다. 결국은 태극기가 이긴다”고 말하곤 한다. 잠재적 동원력에서 우파가 유리하다는 뜻이다.

    태극기 집회가 만들어낸 가장 큰 정치적 동력(動力)은 “우파도 거리와 광장에서 좌파와 맞설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새누리당이 정치적으로 파산한 상태에서 한국의 우파 정통성은 태극기 집회로 넘어온 셈이다. 이를 감당할 정치력을 만들어낼지는 미지수이지만 침묵하던 다수가 자발적 행동으로 체득(體得)한 자신감을 잘 키워가면 한국 보수정치의 생리를 바꿀 것이다.

     

    탄핵 인용되면 더 커질 것

     

    새누리당으로 대표되는 보수정당의 고질적인 문제는 이념무장의 취약성과 이로 인한 대중동원력의 허약이었다. 여의도에 갇힌 정당이고 웰빙정당이었다. “굶주린 늑대에 뜯어 먹히는 살찐 돼지”라는 경멸의 대상이기도 하였다. 태극기 집회는 보수도 행동을 하면 사나운 우파로 변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대중동원력이 약한 보수정당은 좌경화된 언론과 사나운 좌파세력에 눌려 원내(院內) 다수당의 이점(利點)을 살리지 못하고 끌려 다녔다. 1948년 8월15일을 건국절로 지정하지도 못하고, 좌편향 국사 교과서 개혁도 지켜내지 못하였다. 광화문에 이승만(李承晩) 건국 대통령 동상도 세우지 못한다(좌파정당은 김대중 노무현 사진을 거는데 보수정당은 이승만 박정희 사진을 걸지 못한다). 보수정당이 지켜주지 못하니 군대도 언론과 좌파세력의 동네북 신세가 되기도 한다.

    태극기 집회는 이런 고질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투쟁력을 키워갈 것이다.

    태극기 집회는 박 대통령 탄핵기각을 당면 목표로 삼고 있다. 집회규모가 촛불을 압도해야 헌법재판관들이 안심하고 법에 따라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해서 이렇게 외친다.

    “촛불에 겁 먹지 말라, 태극기가 있다!”

    탄핵소추가 워낙 졸속으로 이뤄졌고 소추장은 검찰 기소장의 복사물 수준이라 법대로 하면 기각이 정답이란 것이다.

    기각이든 인용(認容)에 의한 파면이든 태극기 집회는 이어질 것이다. 헌법재판소 결정이 어느 쪽이든 집회의 규모는 더 커질 것이다. 태극기 집회를 키우는 자극은 외부로부터 온다. 언론과 검찰(특검)의 인민재판 식 박 대통령 때리기에 대한 보수층의 반발은 헌재가 파면을 선고할 경우 폭발할 것이다. 행동도 강경해질 것이다.

    좌파는 헌재의 대통령 파면 결정을 정권 쟁취의 계기로 활용함은 물론이고 대한민국 70년의 주류세력을 헌법파괴 세력으로 몰아 역사적으로 청산하려 할 것이다. 친일(親日)마녀사냥 식의 보수사냥은 반공자유민주주의라는 국체(國體)의 변경 시도로 이어지고 이는 태극기 세력으로 하여금 국민저항권 차원의 행동을 강요할 가능성이 높다. 이것이 60일 대선(大選)과 맞물릴 때 선거판은 체제대결의 살벌한 게임이 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파면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선택을 요구 받을 것이다. 역사의 죄인으로 몰락할 것인가, 태극기 집회와 연계하여 구국의 잔 다르크 역을 맡을 것인가?

    만약 탄핵이 기각되면 태극기 세력은 시간을 벌게 되고 그 기간에 정치세력화와 우파 후보 옹립을 모색할 것이다. 이는 태극기 세력의 기회이자 위기가 될 것이다.
    [조갑제닷컴=뉴데일리 특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