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 도·농 별도선거구제 운용으로 '지역구 180·비례 20' 제시
  •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가 주관한 19대 대선후보 정치분야 토론회에서 비례대표 국회의원의 정수 조정을 둘러싸고 치열한 공방이 오갔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와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비례대표 의원의 증원을 주장한 반면,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와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는 이에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했다.

  •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23일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가 주관한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비례대표 의석의 증원을 주장했다. ⓒKBS 방송화면 갈무리
    ▲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23일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가 주관한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비례대표 의석의 증원을 주장했다. ⓒKBS 방송화면 갈무리

    ◆문재인 "지역구·비례대표 1대1 돼야… 의원 정수 탄력적으로"

    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23일 토론에서 "권역별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2012년 대선 때 공약했고 지금도 공약하고 있다"며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하려면 비례대표 의원이 (지역구 의원과) 이상적으로는 1대1, 하다못해 2대1이 돼야 하는데, 의원 정수를 탄력적으로 정할 수 있는 개헌이 돼야 한다"고 밝혔다.

    독일은 연방 하원의 의원 정수를 598명으로 하되, 지역구 의원 정수와 비례대표 의원 정수를 각 299명으로 1대1로 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엄밀한 독일식으로 비례대표제를 하려면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원 정수 비율이 1대1이 돼야 하는데, 현재의 의원 정수 300명에서 150대150으로 하는 것은 지역구 의석의 급격한 감축으로 사실상 불가능하므로 개헌(改憲)을 통해 전체 의원 정수를 늘리자는 제안을 한 셈이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도 이날 토론에서 "국민은 절실한데 국회는 절실하지 않고, 국민은 분노하는데 국회는 분노하지 않는다"며, 국회개혁의 일환으로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환영한다"고 가세했다.

    ◆안철수 "정치권 고통분담해야… 의원 정수 감축도 하나의 방법"

    반면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IMF 외환위기 때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 이후 의원 정수를 10% 줄인 적이 있다"며 "고통분담을 요구하기 위해서는 정치권이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하며, 그것(의원 정수 감축)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민주당 문재인 후보와는 정반대의 해법을 제시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8년 취임 이후 고통분담 차원에서 정치권에 의원 정수 감축을 제안했으며, 이에 따라 당시 299석이던 의원 정수는 2000년 총선부터 273석으로 감축돼 한동안 운영된 적이 있다. 이 선례를 본뜨자고 제안한 것이다.

    현재 국회의 의원 정수가 300명인 상황에서 이 선례를 그대로 본뜨면, 의원 정수는 270명으로 축소된다. 그런데 지역구 의석은 지금도 5개 시·군이 하나로 합쳐져 있고, 특히 호남에 이러한 광대한 지역구가 널려 있는 마당에 더 이상 줄이는 것은 지역대표성 측면에서 곤란하다.

    안철수 후보가 '개방형 비례대표제' 관련 공방에서 비례대표 의원에 대한 국민적 불신 여론을 언급한 것과 관련지어보면, 감축분은 비례대표 의석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이 경우 비례대표 의원 정수는 현재의 47석에서 17석 내외로 줄어든다.

  •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23일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가 주관한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전체 의석의 감축 가능성을 열어놓으면서 비례대표 정당명부를 개방형으로 할 것을 제안했다. ⓒKBS 방송화면 갈무리
    ▲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23일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가 주관한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전체 의석의 감축 가능성을 열어놓으면서 비례대표 정당명부를 개방형으로 할 것을 제안했다. ⓒKBS 방송화면 갈무리

    ◆유승민 "비례대표 20석으로 줄여 장애인·소수자 배려"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도 "의원 정수를 200명으로 줄이고 비례대표는 (현행 47명에서) 20명으로 줄여서 장애인·소수자에 대한 배려는 10% 이내에서 하면 되는 것"이라며 "도시는 중·대선거구제로 하고, 농촌은 면적이 넓으니 소선거구로 하면 된다"고 거들었다.

    정치권에서는 4년마다 총선 때만 되면 비례대표 '순번표'를 받으려는 정치낭인들이 여의도에 줄을 서는 이유를 비례대표 의원 정수가 너무 많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각 당이 1, 2번 등 눈에 띄는 순번에만 장애인이나 여성 등 소수자를 상징적으로 배치한 뒤, 나머지 순번에는 각종 배려해야 할 사람이나 자기 계파 관계자들을 마구잡이로 내리꽂는 바람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유승민 후보가 이날 토론회에서 펼친 주장대로, 비례대표 의원 정수를 줄여야 오히려 장애인과 소수자에 대한 진정한 배려가 이뤄진다는 말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유승민 "의원 정수 200명" 뒷받침은 도·농 별도선거구제

    유승민 후보의 주장대로라면 지역구 의석도 현행 253석에서 180석으로 크게 줄어들게 되는데, 불가능해보이는 이 방안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시된 것이 도·농 별도선거구제도다.

    하나의 시(市)나 자치구(區)에 갑·을·병 식으로 여러 명의 의원을 선출하는 도시는 중선거구제로 하면서 자연스레 의석 감축을 유도하고, 농촌은 그렇게 하기에는 면적이 너무 넓으니 현행 소선거구제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 갑·을·병·정·무로 무려 5명의 국회의원을 뽑는 경기 수원시나 일개 자치구인데도 갑·을·병 세 명의 국회의원을 뽑는 서울 노원구·송파구 등은 중대선거구제로 합쳐지면서 의원 정수를 줄일 여지가 생긴다.

    반면 4~5개의 군(郡)이 하나의 선거구로 묶여있는 농촌의 경우에는 현행 소선거구제가 유지돼, 전국을 중대선거구제로 일괄 전환할 시에 발생하는 8~10개의 광대한 군에서 국회의원을 뽑는 폐단은 발생하지 않게 된다.

  •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는 23일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가 주관한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현재 국회의 의석을 200석으로 줄여 지역구 180석, 비례대표 20석으로 하면서, 줄어든 지역구 의석은 도·농 별도선거구제 운영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KBS 방송화면 갈무리
    ▲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는 23일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가 주관한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현재 국회의 의석을 200석으로 줄여 지역구 180석, 비례대표 20석으로 하면서, 줄어든 지역구 의석은 도·농 별도선거구제 운영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KBS 방송화면 갈무리

    ◆비례대표제 명부 방식 놓고서도 문재인·안철수 공방

    결국 민주당 문재인 후보와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비례대표 국회의원의 증원을 주장한 반면,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와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는 오히려 감축을 주장하며 이에 맞선 셈이다.

    이 과정에서 민주당 문재인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비례대표 명부의 운영 방식을 놓고 추가적인 공방전을 벌이기도 했다.

    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안철수 후보의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는 비례대표 후보도 (국민이 직접) 투표하는 개방형으로 하자는 것"이라며 "여성이나 장애인·소수자가 비례대표를 되는 것을 가로막는 것으로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라고 비난했다.

    이에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국민들이 비례대표는 정당에서 정해놓고 들이미는 부정부패의 온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개방형으로 해서 투명하게 국민이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하자고 했다"고 맞받았다.

    '전국구 국회의원'이라는 이름으로 비례대표가 도입된 이래, 우리나라에서 운영해왔던 비례대표 제도는 '폐쇄형 명부(구속명부, Closed List)' 방식이었다. 정당에서 1번부터 50번까지 순번을 정해 비례대표 후보를 공천하면, 득표율에 따라 정당이 정한 순번대로 앞에서부터 당선되는 방식이다.

    반면 안철수 후보가 제안한 '개방형 명부(불구속명부, Open List)' 방식에서는 정당은 순번 없이 비례대표 후보자의 명단만 제시하며, 유권자가 직접 그 중에서 후보를 선택해서 투표하게 된다. 많은 득표를 한 비례대표 후보부터 순위가 결정돼서 당선되는 방식이다.

    ◆문재인 "폐쇄명부" 주장에 안철수 "개방형으로 국민이 투명하게 권리행사"

    문재인 후보가 안철수 후보를 비난한 지점은 이 지점이다.

    만약 정당이 여성·장애인·소수자 등을 비례대표 앞순번에 배치하면, 현행 제도에서는 국민이 그 사람들이 국회의원이 되기를 원하든 원하지 않든 명부 순번에 따라 사실상 비례대표 의원으로 당선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개방형이 되면 국민들이 소수자 후보에게는 표를 던지지 않을테니 소수자의 국회 진출이 가로막히지 않느냐는 지적이다.

    이에 대한 안철수 후보의 반격은 지금도 정당의 비례대표 순번 결정이 딱히 여성·장애인·소수자를 배려한다기보다는 밀실공천과 계파패권으로 점철돼 있고, 심지어 매관매직(賣官賣職)에 가까운 방식으로 운영됐던 적도 있어서 국민들의 불신이 심각하다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정당이 임의로 순번을 매겨 국민에게 "정해놓고 들이미는" 것이 아니라, 개방형 명부로 해서 국민이 직접 순위를 결정하도록 하면, 비례대표제가 더욱 투명하게 운영될 수 있고 국민의 직접 권리 행사에도 부합한다는 게 안철수 후보 주장의 요지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