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상왕' 노릇할 것이면, 혈세로 유지하는 외교부·안보실은 뭔가
  • 문정인 청와대 외교안보특보. ⓒ뉴시스 사진DB
    ▲ 문정인 청와대 외교안보특보. ⓒ뉴시스 사진DB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가 북한 여행 중 강제 억류된 뒤 고문치사에 이른 충격적인 사건으로 북미 간에 엄중한 정국이 조성되고 있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20일 오전 브리핑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고 웜비어 군의 사망과 관련해 가족에게 조전을 보낼 예정"이라며 "안타까움을 표하고 가족과 친지에게 심심한 조의와 위로를 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미 조율된 한미정상회담의 논의주제와는 별개의 문제"라는 박수현 대변인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북미 간의 극한 대립으로 동북아정세에 고조되는 긴장감이 이달말 한미정상회담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한 것으로 해석된다.

    외부 돌출악재로도 충분한데, 우리 내부에서 자초한 악재는 정상회담을 앞둔 태평양 양안 관계를 더욱 뒤흔들고 있다.

    문정인 외교안보특보는 정상회담을 앞두고 워싱턴 DC에서 자신이 한 발언이 논란을 불러일으켜 청와대로부터 "한미 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자제 요청까지 받았는데도 당당하다.

    뉴욕으로 이동한 문정인 특보는 "나의 소신에는 변함이 없다"며 "협상은 주고받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이 일단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를 중단하기만 하면, 미국의 전략자산을 한반도에서 철수하고 한미연합군사훈련도 축소할 수 있다는 뜻을 재차 밝혔다.

    "문정인 대통령특보(Special Adviser)에게 질문드린다"는 말이 나오자 "문정인 교수로 불러달라. 정부에서 월급받는 자리도 아닌데…"라면서도 사견(私見)을 전제로 일방통행을 계속한 것이다.

    청와대로부터 '경고'를 받았는지를 묻는 질문에는 '노 코멘트'로 일관했다. 자제를 요청했다는 청와대의 설명과는 달리 당사자는 태평한 모양새다. 자신의 발언이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돌출된 '3대 악제'라는 국제적 평가가 무색할 지경이다.

    북한이 미국 본토를 겨냥한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 도발을 계속하는 와중에, 선량한 미국 시민이 북한에서 고문을 받다 사망한 사건은 안보정국에 위중함을 더해주고 있다.

    외교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고, 우리의 외교 관계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대미(對美) 관계다. '제왕적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대미 관계에 있어서 혼자만의 소신으로 독주하지는 못할텐데, 문정인 특보의 최근 언동은 이를 뛰어넘었다는 지적이다. 흡사 '외교 상왕'과 같은 모습이다.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시절 문정인 특보, 백종천 전 청와대 안보실장,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 등과 함께 간담회를 갖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시절 문정인 특보, 백종천 전 청와대 안보실장,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 등과 함께 간담회를 갖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자신의 말대로 "정부로부터 월급받지도 않는" 사람이 혼자만의 신념과 소신을 가지고 정상회담을 열흘 앞둔 우방국을 헤집고 다니며 분란을 일으키게 내버려둔다면, 국민의 혈세로 월급을 주는 외교부와 국가안보실의 존재 의의는 무엇일까.

    새 정부는 외교의 중요성을 감안해 청와대의 외교·안보 기능을 국가안보실로 일원화하고 외교통인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을 그 자리에 임명했다. 또, 성공적인 한미정상회담을 명분으로 정국 경색을 감수하면서까지 강경화 외교부장관의 임명을 강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적인 위상과 책임이 불분명한 청와대 외교안보특보가 중대한 외교정책을 좌지우지하는 일이 반복된다면, 정의용 실장과 강경화 장관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당혹스럽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 문정인 특보가 이른바 '굿캅(Good Cop)·배드캅(Bad Cop) 전략'에서 '배드캅'을 자처했다는 말도 나온다.

    문정인 특보는 지난달 10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북핵 해결 프로세스에서 '운전석'에 앉으려면 미국·중국과의 대북정책 조율이 중요하다"며 "미국은 '배드캅', 한국은 '굿캅'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고 했는데, 북한에 적용해야 할 전략을 돌연 미국에 적용한 셈이다.

    특보직을 맡게 된 뒤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정부가 미국에 쉽사리 말하지 못할 주제들을 비상근인 내가 말하겠다"고 의지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문정인 특보가 "내 역할은 한미정상회담이 성공적이 되도록 돕는 역할"이라고 한 발언, 그리고 뉴욕에서 부득불 자신의 지위가 '비상근'이라는 것을 강조한 것도 이해는 간다.

    하지만 '굿캅·배드캅 전략'은 수사기관의 피의자 신문 전략으로부터 파생된 것이다. 기본적으로 양자 간의 관계가 긴장 상태일 때의 전략이다.

    우리와 미국은 우방이고,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라 서로를 지키는 동맹 관계다. 캅(Cop)에 비유한다면 '불량국가' 북한에 함께 맞서는 동료 경찰이다. 서로의 사이에서 굿캅·배드캅 전략을 쓸 관계가 아닌 것이다.

    자칭 '배드캅' 문정인 특보가 '외교 상왕'처럼 혼자만의 잘못된 판단으로 한미 관계를 위기로 몰아넣는 언동을 계속하면, "튼튼한 한미동맹을 기초로 하겠다"던 문재인 대통령의 '든든한 안보대통령' 계획이 파국으로 끝나게 될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