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개발 수출정책 입법등 1950년대 모두 갖춰...유엔도 '고속성장' 확인박정희 중심 '전통설'은 오류...폄훼-과장 말고 연속성 '기적' 정립해야
  • [경제발전연구] 제22권 제4호 pp. 29-68 /2016 ⓒ 한국경제발전학회
    한국의 산업화와 근대경제성장의 기원, 1953–1965
    ― 전통설과 새로운 해석 ― 

    김 두 얼 (명지대 교수)


해방 이후 한국의 경제성장에 대한 전통적인 설명(전통설)은
산업화에 기반한 근대 경제성장의 계기가 1960년대 전반에 마련되었다는 것이다.
전통설은 1961년 군사정변을 주도한 세력이 집권하면서 한국경제가 공업화에 성공하였고
그 결과 지속적이면서도 급속한 경제성장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본다.
박정희 정부가 이러한 전환을 이룩할 수 있었던 이유로는 수출지향 경제발전 전략을 수립하고
실질적으로 집행하였기 때문이라는 점이 제시된다.

본 연구는 근대경제성장의 역사를 분석한 전통적인 연구들이 지향한 바에 기초하여
 1950-60년대 통계들을 재검토하고 기존의 연구들을 종합함으로써
한국경제의 장기적 성장에 대한 전통설을 대체하는 새로운 해석을 체계화하고자 한다.

새로운 해석의 핵심은 해방 이후 진행된 산업화와 한국경제 성장의 기초가
1960년대 전반이 아니라 그보다 이른 1950년대에 마련되었다는 것이다.

휴전 이후 1950년대 동안 도입된 무역, 산업 정책들 그리고 이러한 정책을 구현할 수 있는
물적 기반을 제공한 원조가 해방 이후 산업화의 본격적 출발점이었으며
근대경제성장의 초석을 갖추는 중요한 요인들이었음을, 그런 맥락에서 근대경제성장의
주요한 기원임을 제시하고자 한다.

1. 서론

한 나라가 언제 근대경제성장 (modern economic growth)의 길로 접어들었고
어떤 요인들로 말미암았는지 구명하는 작업은 경제발전 연구의 핵심 주제 중 하나이다.
사이먼 쿠즈네츠 (Simon Kuznets), 월터 로스토우 (Walter W. Rostow)등의 고전적 작업이 보여주는 것처럼 이 질문에 답하는 시도는 기본적으로 이론적이기보다는 실증적이고
현재적이기보다는 역사적이다.
국민경제가 본격적인 성장 궤도에 오른 이후에야 “언제부터” 이러한 추세가 시작되었는가라는
회고적 질문이 유효해지기 때문이다. 또 이러한 장기추세를 전제로 해야 동시대에 추진된 정책이나 외부 요인과 같은 외생변수 가운데 중요한 것들을 식별하고 영향을 분석함으로써 “어떤” 요인들이 경제성장을 촉발했는지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질문들을 탐구하는 작업은 한 국가의 경제성장을 장기적 시야에서 이해하고 정책시사점을 도출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개발도상국의 경제발전에 유효한 요인들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점 때문에 과거를 대상으로 함에도 불구하고 현재적이며 미래지향적이다.

본 연구는 우리나라의 근대경제성장이 언제 시작되고 어떤 요인들에 의해 촉발되었는지
궁구함으로써, 한국경제의 발전 과정을 새롭게 파악하고 근대경제성장의 기원이라는 보편적 주제에 대한 이해를 제고하는 데 기여하려는 시도이다.
지난 20여년 동안 이루어진 한국경제사에 대한 수량적 연구들의 성과와 20세기 전반에 있었던
여러 가지 역사적 사실들을 고려해 볼 때, 한국경제가 근대경제성장의 길로 본격적으로 접어들게 된 시점은 1945년 이후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본 연구는 다양한 통계를 이용하여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는 근대경제성장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를 점검한다. 그리고 해방 이후의 지속적 경제성장이 그때 촉발되도록 작용한 주요한 외생적 요인을 판별해 보기로 한다.
해방 이후 한국의 경제성장에 대한 전통적이고 지배적인 설명은 산업화에 기반한 근대경제성장의 계기가 1960년대 전반에 마련되었다고 파악한다. 1961년 군사정변을 주도한 세력이 집권하면서 한국경제가 공업화에 성공하였고 그 결과 지속적이면서도 급속한 경제성장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박정희 정부가 이러한 전환을 이룩할 수 있었던 이유로는 수출지향 경제발전 전략을 수립하고 실질적으로 집행하였기 때문이라는 점이 제시된다.
전통설은 1960년 경까지 한국 경제는 경제성장의 길로 접어들지 못하고 침체하였으며, 이것은
상당 부분 5.16 군사정변 이전 정부의 무능과 부패 그리고 수입대체공업화라는 잘못된 정책방향에 기인하였음을 함축한다. 결국 한국경제의 지속적 성장은 수출지향성 때문에 가능했는데, 수출지향 경제성장은 1960년대 초 도입된 수출지향 경제성장정책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전통적 설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20여년 동안 이러한 전통적 설명에 대해서는 다양한 비판 그리고 대안적 설명이 제기되어 왔다. 본 연구는 근대경제성장의 역사를 분석한 전통적인 연구들이 지향한 바에 기초하여
1950-60년대 통계들을 재검토하고 기존의 연구들을 종합함으로써 한국경제의 장기적 성장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체계화하고자 한다.

새로운 해석의 핵심은 해방 이후 진행된 산업화 그리고 수출지향적인 한국경제성장의 기반이 1960년대 전반이 아니라 그보다 이른 1950년대에 마련되었다는 것이다.

  •  휴전 이후 1950년대 동안 도입된 무역, 산업 정책들 그리고 이러한 정책을 구현할 수 있는 물적 기반을 제공한 원조가 해방 이후 산업화의 본격적 출발점이었으며 수출지향적 근대경제성장의
    초석을 갖추는 중요한 요인들이었음을, 그런 맥락에서 한국경제 성장의 주요한 기원임을 제시하고자 한다.
  • 본 연구는 새로운 자료를 발굴, 분석하는 것이기보다는, 1950, 60년대에 대한 기존 실증연구들
    그리고 해당 시기의 정부 통계들을 가급적 폭넓게 파악하여 종합하는 작업에 가깝다.
    이러한 시도가 부가가치를 갖는 까닭은 다음과 같다.

    먼저1950, 60년대에 대한 많은 기존의 실증 연구들은 중요한 역사적 사실들을 밝혀왔지만
    이런 사실들이 어떻게 다른 연구들과 관련성을 가지고 있으며 궁극적으로 한국의 장기 성장의
    모습에 대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심도있게 고찰하고 명시적으로 논의하는 데에는 소홀하였다. 많은 사실들을 나열하는데 그치지않고 이들을 종합하는 큰 그림을 그려나갈 때
    개별 사실의 의미가 분명해지며 향후 연구가 보다 생산적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 연구의 개괄과 종합은 충분한 의미를 갖는다.
    기존 통계에 대한 종합적이고도 비판적인 검토가 의미있는 이유 역시 이전 연
    구들이 이것을 충분히 수행하지 않았기 있기 때문이다. 1950-60년대를 다룬 많은 연구들은 동시대의 통계들을 제한적으로만 이용한 경향이 있으며, 이러한 문제는 1950년대 통계와 관련해서
    특히 두드러진다. 당시 우리나라 정부가 경제 관련 통계들을 적지 않게 생산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 것은 기본적으로 통계에 대한 불신에 기인하였다고 짐작된다.
    하지만 통계가 여러 가지 결함을 안고 있는 것은 일상적인 문제이다. 이러한 한계는 다양한 자료들을 대조하고 심도 있는 검토를 통해 극복해야 할 과제이지, 통계를 방치하는 것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이하의 논의는 다음과 같이 진행한다.
    먼저 제2장에서는 수출지향 경제성장의 기원에 대한 전통설을 살펴보고,
    제3장에서는 이 이론이 갖는 이론적, 실증적 문제점들을 검토한다.
    제4장에서는 본 연구가 제시하고자 하는 “새로운 해석”을 체계적으로 기술한다.
    제5장에서는 본 연구의 결과가 가지는 정책적 함의를 제시하고 추가 논의 사항을 다룬 뒤,
    제6장에서 논의를 마무리한다.

  • 2. 전통설

    해방 이후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기원에 대한 지배적인 견해는 1960년대 전반
    박정희 정부가 추진한 수출지향적 경제개발 정책을 시발점으로 보는 것이다.
    “전통설”은 논자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제기되어 왔지만,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크게 네 가지 명제로 구성해 볼 수 있다.

    첫째, 한국 경제가 지속적 경제성장의 길로 접어든 시점은 1960년대 전반이다.
    1950년대 말까지 한국경제는 침체된 경제상황을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고 이것을 벗어날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상태였지만, 1960년대 전반에 활로를 찾고 지속적이면서도 급속한 경제성장을 시작하였다. 이러한 변화가 시작된 시점을 특정하기는 쉽지 않지만 대략 1962년부터 1964년 사이로 볼 수 있으며, 1965년 경이 되면 근대경제성장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은 명확하다.
    둘째, 1960년대 전반부터 근대경제성장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은 이 시기부터 산업화가 성공적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1950년대에도 산업화를 위한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은 성공적이지 못하였다. 그에 비해 1960년대에는 산업화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고 그 결과 근대경제성장이 이루어졌다.
    셋째, 1960년대 전반부터 산업화가 성공적으로 진행되어 지속적 경제성장의 길로 접어들 수 있었던 것은 산업화가 수출지향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1950년대에 이루어진 산업화 노력이
    성공하지 못한 것은 산업화가 대내지향적인 혹은 수입대체적인 방식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1960년대에는 산업화가 수출지향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성공적이었고, 궁극적으로 지속적 경제성장도 가능하였다.
    넷째, 수출지향 공업화는 정부의 정책 주도로 이루어질 수 있었다. 정부가 수출지향적 산업화를 핵심으로 하는 경제개발계획을 입안하고 여기에 맞추어 자원배분 등을 통해 민간부문을 성공적으로 유도하였기 때문에 산업화와 수출확대 그리고 고도성장을 달성할 수 있었다.

    이상에 제시한 전통설은 한국의 근대경제성장이 1960년대 전반부터 박정희 정부가 추진한 수출지향 경제정책에서 비롯되었다는 명제로 요약할 수 있다. 사실 이러한 역사해석은 1961년 군사정변을 통해 잡은 집권세력의 역사관으로부터 비롯되었다. 혁명세력은 “절망과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하는 것을 혁명공약으로 제시하였다.
     이처럼 우리 국민들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은 이유를 전 정권의 무능 때문으로 평가한 뒤, 빈곤으로부터의 탈피를 위해 군사정변을 일으키고 경제개발계획을 추진하게 되었다고 주장하였다.
    박정희 정부 당시 활동한 경제관료나 기업가들 역시 유사한 생각을 표명해 왔다.
    제1차경제개발5개년 계획 평가서는 서문에서 “제1차경제개발5개년계획의 성공적인 수행으로
    무기력하였던 지난날의 우리의 역사는 이제 그 종지부를 찍게 되었고 생기발랄한 약동의 역사로 대치되어 가고 있는 것”이라고 평가하였다.
    1970년대 초 경제기획원 장관을 지낸 태완선은 1950년대의 한국경제는 “한 마디로 말하여 빈곤의 악순환이었다”고 규정하면서, “참다운 지도자”의 등장으로 이러한 상황을 벗어날 수 있었다고 서술하였다. 제3공화국 경제개발정책 추진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던 오원철은 「한국형경제건설」에서 1961년 제1차 경제개발계획이 수립됨으로써 한국의 “산업혁명”이 시작되었으며, 보다 본격적으로는 “공업의 수출전환”을 착수한 1964년부터였다고 언급하였다. 한국경제인연합회 상임이사를 역임한 조규하도 1945년부터 1961년까지의 기간을 “기나긴 어둠의 터널”로 묘사하고, 이로부터 벗어나게 된 것은 ‘62년부터 시작된 박정희 대통령 주도하의 경제개발계획의 실시“로부터라고 서술하고 있다.

    정치세력의 변화와 경제발전을 연결하는 이러한 역사 해석은 1950년대와 대비되는 1960년대의 여러 상황들로 인해 별다른 이견 없이 받아들여졌다.
    우선 1950년대 경제를 분석한 연구들은 1950년대의 산업화가 경제성장에 기여하지 못하였
    다는 부정적인 견해를 표명하였다. 예를 들어 김대환 (1981)은 50년대 한국의 공업화가 “대외의존의 심화와 대내불평등의 확대과정”이었다고 규정하였으며, 다른 연구들 역시 이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공제욱, 조석곤 공편 (2005), 이병천 (1999), 이상철 (2005; 2015), 장하원(1999), Amsden (1989), Woo (1991) 등 한국경제발전을 다루는 많은 연구들도 1960년대 이후 진행된 지속적 경제성장을 1960년대에 이루어진 변화들로부터 설명하고자 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11) 차동세, 김광석 (1995), Cummings (1997), 이헌창 (2012), 한국경제60년사편찬위원회 (2010) 등 한국경제를 다룬 대표적인 개설서들도 대체로 전통설에 입각하여 1950년대와 60년대를 서술하고 있다.

    한편 최근 들어서는 전통설의 패러다임 하에서 제기되는 중요한 질문, 즉 “박정희 정권이 어떤 계기로 인해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정책 방향을 설정하게 되었는가” 라는 문제가 주요 연구과제로 조명을 받았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장하원(1999), 이완범 (2006), 박태균 (2007), 기미야 다다시 (2008), 이영훈 (2012), 공제욱, 조석곤 공편 (2005) 등은 박정희 정부의 정책과 과거 정부들의 정책 간의 연속과 단절, 그리고 단절의 계기를 파악하는 작업을 수행하였다.
    박정희 정부와 그 이전 정부 하의 경제상황을 대비하는 전통적 입장은 박정희 정부에 대해 정치적으로 비판적 견해를 견지하는 학자들조차도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전철환 (1981), 유종일 엮음 (2011), 장하성 (2014), 양우진 (2016)등은 해방 이후 경제발전이 1960년대에 시작되었다는 견해를 인정하면서 그 내용을 비판하는 방식으로 논지를 전개한다.

  • 3. 전통설의 문제점

    해방 이후 한국경제의 성장이 1960년대 전반 실시된 수출지향 경제개발정책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전통설은 1960년대 전반에 군사정변을 일으킨 세력이 제기한 이후 오늘날까지 한국경제의 성장이 어떻게 비롯되었는지를 설명하는 지배적인 패러다임의 지위를 견지하여 왔다.
    하지만 이러한 지배적 지위는 이론적 성찰과 실증적 검증을 이겨낸 결과는 아니었다.
    이하에서는 여러 통계들과 선행 연구들에 기초하여 전통설을 구성하는 네 명제가 사실과 부합하는지를 점검해 보기로 한다.

    (1) 경제성장
    우리나라의 경제성장과 관련해서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사실은 늦추어 잡아도 1965년부터 한국 경제는 산업화에 기초한 “고도성장”에 접어들기 시작하였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 시기의 경제성장률이 매우 높았다는 사실은 역설적이게도 지속적 경제성장이 언제 어떤 계기에 의해 시작되었는가라는 문제를 차분하게 돌아보고 반추하는 작업을 소홀히 하도록 만든 측면이 있다.
    만일 우리가 고도성장과 근대경제성장을 동일하게 놓는다면 전통설은 타당할수 있다.
    하지만 경제성장에서 10%에 가까운 고도성장이 유지되는 기간은 오히려 특수하며,
    근대경제성장 나아가 근대경제성장의 출발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서는 적절하지 않다.
     물론 어느 정도의 경제성장율이 얼마만큼 지속될 때 근대경제성장이 진행되고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세계경제의 장기성장 추세를 살펴보면, 연평균 3-4% 정도 이상의 경제성장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제를 “지속적인 근대경제성장 (sustainable modern economic growth)”이 이루어진다고 보는 것에 큰 무리는 없다. 한국의 근대경제성장이 1960년대의 고도성장으로부터 시작되었는지 아니면 일정 수준 이상의 경제성장이 진행되다가 고도성장기로 접어들게 되었는지를 파악하려면 1950년대의 경제성장을 살펴보아야 한다.

  • <그림 3-1>은 1953년부터 현재까지 우리나라의 실질 GDP 성장률을 보여준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1965년 이후에는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은 10% 수준으
    로 접어들며, 이러한 높은 경제성장율이 유지되는 기간을 우리는 통상적으로 “고
    도성장기”라고 부른다. 그런데 고도성장기에 접어들기 이전의 시기가 경제성장률
    이 절대적 수준에서 볼 때 낮았던 것은 아니다. 1954년부터 1960년까지의 성장
    률은 평균 5.3%이다. 물론 고도성장기보다는 낮은 수준이지만 경제학에서 일반적
    으로 받아들여지는 기준 혹은 근대경제성장이 진행된 지난 200여년 동안 세계
    각국의 성장률을 고려해 볼 때, 5.3%의 경제성장율은 결코 낮은 수준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1950년대를 침체기로 규정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경제성장률에 근거해서 근대경제성장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Kuznets (1966), Rostow
    (1960) 등 경제발전론의 전통적 연구에 기반한 것이며, 경제발전에 대한 로버트 루카스
    (Robert Lucas, Jr.)의 유명한 규정, “경제발전이라는 문제는 단지 국가간 시점간 일인당
    소득의 수준과 증가율의 관측된 양상을 설명하는 것”이라는 언명과도 일관된 것이다.
    Lucas (1988), p.3. 한편 Maddison (2003, p.259)은 세계경제의 성장은 산업혁명 이전
    에는 연평균 0.1% 수준에 불과했지만, 산업혁명 이후인 1820년부터 2000년까지 180년
    기간 동안 전세계 GDP의 연평균 성장률을 약 2.2%, 서유럽국가들은 약 2.1%로 제시
    하였다. 특히 본 연구가 다루고 있는 1950년부터 2000년까지 50년 기간을 놓고 보더라
    도 근대경제성장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서유럽 국가들의 연평균 GDP 성장률은
    3.2%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연평균 3-4%의 경제성장율을 지속하는 경제가 근대경제성
    장의 필요조건을 갖추었다고 보는 기준을 기각할 만한 근거는 찾기 어렵다. 아울러 이
    러한 기준은 경제성장론의 표준적인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Weil (2005, Ch.1) 등과도
    일관된 것이다. 물론 이러한 성장률은 산업의 고도화에 뒷받침된 것일 때 지속적일 수
    있으며, 진정한 의미의 근대경제성장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경제가 이 시기에 산업화
    가 이루어지고 있는지 여부는 다음 절에서 다루기로 한다.>

  • 물론 1950년대의 경제성장율은 해외로부터의 주입 (injection), 즉 원조에 크게 힘입은 것이다.
    하지만 이 점은 1960년대도 마찬가지이다. 김두얼, 류상윤 (2014)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받은 ODA 규모는 1950년대 후반에 가장 높은 수준을 보이지만, 1960년대에도 1950년대보다 크게 모자라다고 보기 어려운 규모가 계속 유입되었다 (그림 3-2).
    따라서 원조 규모를 가지고 1950년대의 성장을 폄하하고 1960년대의 성장을 높이 평가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나아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세계 ODA의 역사를 보더라도 원조가 그대로 경제성장율 제고를 담보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이 시기의 경제성장이 외부로부터의 주입에 힘입었다고 해서 무의미하다고 치부하는 것 역시 적절하지 않다.

    한편 개발도상국은 경제활동의 시장화 정도가 낮기 때문에, 또 자료 수집과 처리 상의 문제 때문에 GDP 추계가 경제의 실상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해서 개발도상국의 경제성장률을 추정하는 대안으로 많이 사용되는 지표 중 하나가 전력생산 및 사용량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1950년대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 전력생산 추이를 살펴봄으로써 당시의 경제상황을 보다 심도 있게 파악할 수 있다.

    <그림 3-3>과 <표 3-1>은 전력생산 및 사용량 추이를 보여준다. 1950년대 동안 전력생산은
    연평균 13.1%씩 상승하고 있으며, 1960년대 전반에 비해 결코 전
    력생산 증가 속도가 낮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GDP 뿐 아니라 전력생산 및 소비추세 역시 근대경제성장이 1950년대에 이미 시작되었으며, 이 시기가 1960년대에 도래할 고도성장의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는 해석이 현실을 보다 잘 반영하는 설명임을 제시한다.

  • 이상의 논의를 마무리하기 전에 두 가지 문제를 언급하고자 한다.
    먼저 이 시기의 경제성장율을 평가함에 있어 국민일인당 지표가 아닌 총량지표를 사용한 까닭이다. <표 3-2>는 일인당 실질 GDP 증가율 추이를 보여주는데, 1950년대의 일인당 GDP 증가율은 연평균 1.6%로 비교적 낮은 수준이었다. 그런데 이 표는 일인당 GDP 성장률이 낮았던 이유가 낮은 성장률 때문이 아니라 높은 인구증가율에 기인하였음을 보여준다.
    즉 1950년대는 해방 이후 현재까지의 70년 기간 동안 출산율이 가장 높았던 시기였고, 이 점이 일인당 GDP 성장률이 낮게 나타나는 원인이었다.
    만일 1950년대 후반의 인구증가율이 고도성장기인 1960년대 후반의 수준이었다고 한다면,
    1950년대 후반의 일인당 GDP 증가율은 3%가 넘는 높은 수준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일인당 GDP는 절대적인 측면에서나 이후 시기와의 비교라는 측면 모두 이 시기의 경제성장을 저평가하고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실질 GDP나 전력생산과 같은 총량지표가 이 시기의 경제성장 추세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보다 유의미한 정보를 제공해준다고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