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 넘어 반발, "개인 노력으로 얻은 학점도 안 본다는 건 오히려 역차별이죠"
  • ▲ 블라인드 채용을 풍자한 만화. ⓒ 윤서인의 조이라이드
    ▲ 블라인드 채용을 풍자한 만화. ⓒ 윤서인의 조이라이드

    문재인 정부가 도입한 공공기업 블라인드(Blind) 채용이 '2017 하반기 공채'부터 본격 시작되자 취업준비생(취준생)들이 거센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올 하반기 공기업 채용 절차에 학력, 출신과 같은 항목을 기재하지 않고 직무 관련 정보로 채용을 결정하는 블라인드 채용을 의무화했다. 그러나 이 같은 채용 절차를 덜컥 마주한 취준생들은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몰라 어리둥절하다는 반응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5월 대선 공약으로 블라인드 채용을 제시했다. 이후 6월 22일, 문 대통령은 "당장 이번 하반기부터 공무원 공공부문 채용 시 블라인드 채용제도를 실시했으면 한다"고 했다. 실제로 블라인드 채용이 9월부터 시작되는 하반기 공채에 적용된 것이나, 취준생들이 변경된 채용 절차를 준비할 시간은 100일여 남짓인 셈이다.

    청년들의 불만은 곧장 가시화됐다. 장OO(25) 씨는 30일 <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블라인드 채용 검증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흔히 요즘 친구들 사이에서 '자소서'(자기소개서)는 '자소설'(자기소개 소설)로 불린다. 몇 천대 1의 경쟁률을 보이는 취업전쟁에서 인사담당자의 눈에 돋보이려면 자신의 활동을 더 극적으로 보이도록 강조하고, 일부 허구적인 내용도 가미한다"고 털어놨다. 그는 "자기소개서만으로는 검증이 불가한 요소가 있는데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언급했다.

    블라인드 채용이 초래하는 역차별도 하나의 문제점으로 거론되고 있다. 금융계 공기업 취직을 준비하는 최OO(27) 씨는 "성별, 출신지역, 나이와 같은 사항은 선천적으로 결정되는 것들이기에 채용시 고려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공정하다고 볼 수 있지만 개인의 노력으로 얻은 학점, 자격증, 영어 성적도 안 본다는 것은 오히려 역차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외모나 언변이 뛰어난 지원자가 채용과정에 유리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한OO(30) 씨는 "블라인드 채용 절차를 보면 '면접'을 중요시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면접에서는 매력적인 외모나 말솜씨가 수려한 지원자가 유리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의 겉모습과 말이 모든 것을 대변하지 않는다"며 블라인드 채용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지금까지 준비해왔던 노력들이 허사로 돌아간다는 지적도 나온다. 취업을 준비 중인 대학생 박OO(26) 씨는 한 해 전부터 공공기관에 취업하기 위해 스펙을 쌓았다. 기본적인 영어 성적도 준비했고, 취업 박람회를 다니면서 공기업 입사를 준비했다. 그러나 9월부터 시작하는 블라인드 채용에 허탈한 기분을 느꼈다고 했다. 그는 "그렇다고 해서 공공기관에서 일하기 위해 준비해왔다는 점을 이력서로 쓸 수도 없다"고 토로했다.

    이같은 불안감에 취준생들은 블라인드 채용을 도와주는 학원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새로운 제도가 오히려 사교육을 키운 셈이다.

    현재 학원가에서는 공기업 블라인드 채용 단기 합격 설명회가 열리고 있다. 인터넷에 블라인드 채용을 검색하면 '블라인드 채용 단기 준비반, 컨설팅' 등 다양한 학원 광고가 나온다. 실제로 지난 20일 노량진 학원가에서 열린 '블라인드 채용 설명회'에는 참가 신청자가 5,000여 명에 달해 노량진 일대가 마비되기도 했다.

  • ▲ 블라인드 채용을 풍자한 만화. ⓒ 윤서인의 조이라이드

    물론 블라인드 채용 방식을 선호하는 취업 준비생도 있다. 그러나 그들도 어떤 기준이 채용의 당락을 가르는 객관적 지표인지에 대해 의구심을 품었다.

    대학생 김OO(27) 씨는 "대학생활을 하며 봉사활동을 포함한 다양한 사회 공헌 활동을 해왔기에 자기소개서에 쓸 이야기는 많다. 그렇지만 다른 지원자에 비해 유리한지 판단할 객관적 판단 기준이 없다"며 불안감을 내비쳤다.

    이와 함께 몇몇 공공기관이 같은 날 시험을 치르는 '합동 채용' 방식을 도입할 것으로 전해져 공기업 취준생들의 불안감은 가중되고 있다. 이미 산업은행과 예금보험공사와 같은 공기업은 필기 시험을 같은 날 몰아치르고 있어 취준생들에게는 'A 매치 데이'로 불린다. 이에 대해 박OO(26) 씨는 "취업에 대한 예측 가능성이 낮아 불안한 심정"이라고 했다. 

    조동근 명지대 교수는 블라인드 채용과 관련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학력 등을 표기한 이력서는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인데, 그것을 보지 않겠다는 것은 자신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임종화 경기대 무역학과 교수는 "완벽하게 공정한 블라인드 채용은 실현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임 교수는 "채용시 학력 쓰지 말라, 학점, 영어성적 쓰지 말라고 하면 인사 담당자는 인재를 찾기 위해 더 은밀해 질 수 있다"며 "채용 기준이 애매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공정성을 상실한 채용 제도가 형성되는 빌미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