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관 스스로 정치깽판 만든요즘의 법창야화(法窓夜話)
  •  1950년대 말 어느 날. 서울시내 일원에 수많은 전단지가 살포되었다.
    서울지법 유병진 판사가 서울대생이던 필자와 진보당 사건 피고인들 대부분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을 규탄하는 내용이었다. 당시 집권당이던 자유당도 이를 계기로
     ‘법관 연임법’이란 걸 만들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법관을 일정기간마다 걸러낼 수 있는
    법(?)이었다. 유병진 판사 등 몇몇은 그 정치법에 걸려 얼마 후 사법부를 떠나야 했다.
      
     유병진 판사는 판사직을 그만 두고 변호사 개업을 했다.
    그러던 어느 해 4월 3일 퇴학생이던 필자는 유병진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갔다.
    4월 3일이 필자가 무죄선고를 받은 날이었기 때문이다.
    돈이 없어 좋은 건 못 사고, 비싸지 않은 넥타이핀 한 개를 선물로 사들고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유병진 변호사는 판사 때는 근엄한 표정만 지었는데, 재야로 돌아간 그 때는 만면에 웃음을 띠며 필자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필자는 그 후 그 분이 작고할 때까지 그 분을 다시 만날 기회가 없었다.
    훗날 보니 그 분은 한국사법사에 길이 남을 ‘꼿꼿 판사’의 전범(典範)으로 추앙받고 있었다.
    그런 분에게 무죄선고를 받은 것은 필자에겐 여간 큰 영광이 아니었다.

     그 분이 법관으로서 가졌던 소신과 원칙은 투철한 법적 객관주의였다.
    그 분은 진정한 친(親)대한민국-자유민주주의 인사였다.
    그러나 재판만은 이념적 사건에 대해서도 정치적 호불호, 애증, 차별 없이 ‘법대로만' 재판했다.
    철저한 법적 객관주의였던 것이다. 정치적-이념적 논란이 많았던 사건에 있어서도
    유병진 판사에 의해 간혹 무죄가 나온 건 그 때문이었고, 바로 그 때문에
    “xxx에게 무죄를 선고한 유병진 타도하라”는 전단지가 길거리에 곧잘 살포되곤 했던 것이다.

     요즘은 어떤가? 이젠 세상이 180도 뒤집어졌다.
    지난 시대엔 권위주의 정권들이 법적 객관주의를 무시하고 ‘제멋대로 정치재판’을 했다고
    비난하던 이념세대가, 이제는 오히려 법적 객관주의 아닌 ‘주관주의적 정치재판’을 옹호하는
    ‘거꾸로 판’이 되었다. 어떤 이는 아예 대놓고 “사법행위는 정치행위‘라며, 재판을 ’진보적‘ 판사 개인의 ’진보적‘ 취향과 잣대에 따라 해야 한다는 투의 주장을 공공연히 폈다.

     새 대법원장 지명자도 ”나는 ’보수적 판결‘도 많이 했다“는 소리를 했다.
    ‘진보적 판결’도 많이 했다는 뜻이다. 필자는 여기서 보수가 좋으냐, 진보가 좋으냐를 따지려는 게 아니다. 재판을 하는데 생뚱맞게 보수니 진보니 하는 걸 왜 끌어들이느냔 말이다.
    법이 정한 고대로만 하면 됐지, 거기 무슨 보수 입맛대로가 있고 진보 입맛대로가 있어야 하는가? 지금 재판 하자는 건가, 이데올로기 투쟁 하자는 건가?
    법조문도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으로 각자 취미대로 써먹자는 소리인데,
    이거야말로 문명개화 세상의 법관들이 가장 경계해야 할 ‘법의 자의적 도구화’ 아닌가?
  •  요즘 정당 일각과 SNS 상에선 오민석 서울중앙지법 영장담당 부장판사가
    최근 '댓글 사건' 피의자에 대한 검찰의 영장청구를 기각했다 해서,
    그를 ‘적폐’ ‘최순실 하수인’ '촛불 대상‘ ’기각의 아이콘‘ ’물러나라‘ 어쩌고 하며
    신상 털기를 하고 욕하고 매도하고 있다고 한다. '이른바 대세'에 따르지 않는 법관에 대한
    자유당-유신 시절’의 알통주의를 고스란히 옮겨다 쓴 또 하나의 알통주의가 아닐 수 없다.
    이데올로기만 다르다뿐이지, 하는 짓은 똑같다.

     수산 덴햄 아일랜드 공화국 대법원장(2011~2017)도 일찍이 재판부의 공정한 재판을 해칠 수
    있는 SNS 사용에 대해 법적 대책을 세워야 할 때라고 우려한 바 있다.
    아일랜드의 해묵은 ‘잡스타운 재판(Jobstown Trial)'에서 일부 피고인들이 SNS를 통한
    지나친 ’법률 밖‘ 정치투쟁을 한 것에 대한 반응이었다.
    우리의 경우도 ’공정재판 보장법‘이라도 만들어야 할 판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사법부의 권위는 다른 누구보다도 법관들 스스로 자신들의 존엄을 지키려 할 때라야
    보호될 수 있다. 법관들 자신이 비록 일부라도 사법부의 정치화, 법관의 정치화, 사법행위의 정치화를 자청하는 경우라면 사법부의 권위는 지켜지기 힘들다.
    유병진 판사, 김홍섭 판사 같은 왕년의 ‘고고한 법관’들이 새삼 우러러 보이는
    요즘의 법창야화(法窓夜話)다.
     
    류근일 / 전 조선일보 주필 /2017/8/10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