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히든스페이스서 내달 18일까지 ‘자화·자각·자접’ 정신 담은 판화 선보여디지털 복제 시대 경종… 대형 실크스크린·목판화 등 ‘타블로 판화’ 정수 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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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자현의 개인전 ‘구자현 판화전’이 12일부터 9월 18일까지 대구 수성구 갤러리 히든스페이스에서 열린다. 12일 판화전 개막 오픈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는 구자현 작가.ⓒ뉴데일리
“예술은 크리에이티브하지 않으면 예술이 될 수 없습니다. 어디서 본 듯한 것은 가짜고, 비슷한 것은 가짜입니다.”대구 출신 판화가 구자현의 작업을 관통하는 말이다. 이미지가 클릭 한 번으로 복제되고 AI가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시대에도 그는 판을 직접 그리고, 새기고, 찍는 ‘손의 작업’을 고집한다.구자현의 개인전 ‘구자현 판화전’이 12일부터 9월 18일까지 대구 수성구 갤러리 히든스페이스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약 50년간 이어온 그의 판화 작업을 한자리에서 보여주는 자리로, 대형 목판화와 실크스크린, 석판화 등을 통해 판화와 회화의 경계를 넓혀온 작업을 소개한다.구자현 판화의 핵심은 ‘자화(自画)·자각(自刻)·자접(自摺)’이다. 작가 자신이 판에 그리고, 직접 새기고, 직접 찍어내는 방식이다. 원화를 단순히 확대·복제해 찍어내는 복제판화와는 출발점부터 다르다.◇ “비슷한 것은 가짜”…독창성을 향한 고집대구에서 만난 구자현 작가는 인터뷰에서 예술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독창성이라고 강조했다. “예술은 크리에이티브하지 않으면 예술이 될 수 없습니다. 어디서 본 듯한 것은 가짜고, 비슷한 것은 가짜입니다.”그는 “남하고 차별되고 아주 크리에이티브해야 예술이 된다”며 “일반론적인 것으로 예술을 다 논할 수 있다면 이미 예술이 아니다”고 말했다.판화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는 “판화는 이지적이고 지적”이라고 했다. “판은 한번 찍으면 사인하고 끝입니다. 그림처럼 잘못됐다고 붓으로 덧칠할 수도 없습니다. 같은 판에서 같은 원칙을 지켜야 하죠. 그런 점이 내 적성에 맞았습니다.” 판화의 엄격한 제작 과정이 오히려 자신의 작업 방식과 맞았다는 설명이다. -
- ▲ 일본 판화 전문지 ‘판화예술’ 편집주간 마츠야마 다츠오(오른쪽)는 구자현의 이러한 작업을 ‘타블로 판화(Tableaux-Printmaking)’로 평가했다. 판화를 그래픽 작업에 머물게 하지 않고 회화와 같은 규모와 밀도를 가진 화면으로 확장했다는 것이다.ⓒ뉴데일리
◇ “자기 극복 없이는 제작 못해”…판화는 노동이자 수행구자현은 판화 작업의 어려움도 숨기지 않았다. “판화는 정말 어렵습니다. 자기 극복 없이는 제작할 수 없습니다.”특히 목판화는 판을 직접 깎아야 하는 만큼 상당한 노동이 필요하다. 그는 작업 과정에서 집중력을 유지하는 것이 작품의 완성도를 좌우한다고 했다.“저는 빨리 끝내는 게 좋습니다. 작품은 빨리빨리 끝내는 게 좋아요. 다른 잡념이 들어오면 화면이 흐트러집니다. 초지일관해야 작품의 밀도와 완성도가 좋아집니다.”도구와 재료를 대하는 태도 역시 중요하게 여긴다. 종이와 나무, 잉크 등 재료를 함부로 다루지 않고 소중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그는 한국과 일본의 장인문화 차이를 이야기하며 “일본에서는 장인을 높게 평가하지만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기술을 낮춰 보는 인식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판화처럼 손의 기술과 노동이 필수적인 예술을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는 의미다.◇ 원과 타원, 그리고 2m 대형 판화…“판화도 회화가 될 수 있다”구자현의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원형도 이번 전시의 주요 감상 포인트다.그는 “동그라미에는 우주, 평화, 화목 같은 좋은 의미가 많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동그란 그림을 보면 그림이 움직여 보인다”며 “우리 동공이 동그랗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독특한 생각도 내놨다.그의 판화는 크기에서도 기존 판화의 고정관념을 깨뜨린다. 약 2m에 이르는 대형 실크스크린과 목판화는 작은 종이 위에 제작되는 전통적인 판화의 범위를 넘어 캔버스 회화에 가까운 규모를 보여준다.일본 판화 전문지 ‘판화예술’ 편집주간 마츠야마 다츠오는 구자현의 이러한 작업을 ‘타블로 판화(Tableaux-Printmaking)’로 평가했다. 판화를 그래픽 작업에 머물게 하지 않고 회화와 같은 규모와 밀도를 가진 화면으로 확장했다는 것이다.구자현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한 뒤 일본 오사카예술대학과 교토 세이카대학, 큐슈산교대학 대학원에서 공부했다. 2002년 공간 국제판화 비엔날레 대상을 비롯해 국내외 주요 판화 비엔날레에서 수상했고 일본과 유럽 등에서 작품을 선보였다. -
- ▲ 이번 전시에서는 목판화와 실크스크린, 석판화 등 다양한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사진은 구자현 작가가 목판화 작품을 설명하고 있는 장면.ⓒ뉴데일리
◇ 디지털·AI 시대에 다시 묻는 ‘손의 가치’이번 전시가 던지는 질문은 명확하다. 이미지를 컴퓨터로 만들고 AI로 생성하는 시대에 왜 굳이 사람이 판을 깎고 종이에 직접 찍어야 하는가.구자현의 답은 작품의 제작 과정에 있다.판을 고르고, 재료를 만지고, 칼을 움직이고, 잉크를 바르고, 종이를 맞춰 찍는 시간. 그 과정에 쌓인 노동과 판단은 디지털 이미지처럼 단순하게 복제할 수 없다.그가 약 50년 동안 판화를 이어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이번 전시에서는 목판화와 실크스크린, 석판화 등 다양한 작품과 특수 엠보싱 기법을 활용한 인쇄물, 엽서 등을 만날 수 있다.구자현의 판화는 결국 한 가지 질문을 관람객에게 남긴다. 모든 것이 복제되는 시대에, 사람이 직접 만든 흔적은 무엇으로 남을 것인가.전시는 9월 18일까지 계속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