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개 마을·24개 팀 제73회 광복친선축구대회 성료“지방소멸 막겠다”며 정작 주민 공동체 공간은 없어70년 역사 계승 위해 ‘번듯한 공공운동장’ 필요성 제기
  • ▲ 지난 15일 제73회 신광면민 광복친선축구대회 및 민속경기대회 개회식을 축하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뉴데일리
    ▲ 지난 15일 제73회 신광면민 광복친선축구대회 및 민속경기대회 개회식을 축하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뉴데일리
    광복 81주년을 맞아 포항 신광면에서 73년째 이어져 온 축구공의 함성이 올해도 울려 퍼졌다.

    지난 15일부터 17일까지 신광중학교 운동장에서 열린 ‘제73회 신광면민 광복친선축구대회 및 민속경기대회’에는 22개 마을, 2천여 명의 주민이 참여해 광복의 기쁨을 되새기고 마을 간 화합을 다졌다.

    하지만 축제의 열기 뒤에는 70년 넘게 이어진 지역의 대표적인 민간 광복행사를 정작 주민들이 마음껏 치를 수 있는 공공 체육시설 하나 없는 현실이 놓여 있어 씁쓸함을 남겼다.

    신광면민 광복친선축구대회의 역사는 194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광복 이듬해인 1946년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 신광면 주민들은 해방의 의미를 잊지 않고 선열들의 애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스스로 축구대회를 만들었다.

    당시에는 지금과 같은 축구공조차 구하기 어려웠다. 주민들은 새끼줄을 촘촘히 엮어 공을 만들었고 맨발이나 고무신을 신은 채 운동장을 누볐다.

    일제강점기 억눌렸던 민족의 울분과 해방의 환희를 축구라는 놀이에 담아냈던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행사는 어느덧 73회째를 맞았다. 단순한 마을 체육행사를 넘어 전국적으로도 찾아보기 힘든 민간 주도의 장수 광복 기념행사로 자리매김했다.

    올해 대회 역시 3일간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

    축구에는 24개 팀이 출전해 마을의 명예를 걸고 치열한 승부를 펼쳤으며, 올해 새롭게 마련된 남녀 혼성 승부차기에는 여성 5명과 남성 2명이 한 팀을 이뤄 참가했다.

    어르신부터 어린이까지 함께 즐길 수 있는 윷놀이도 마련되면서 세대와 성별을 넘어 면민 모두가 어우러지는 화합의 장이 펼쳐졌다.
  • ▲ 대회 마지막 날인 17일 점심시간 신광면 체육회가 마련한 짜장면을 주민들이 맛있게 먹고 있다.ⓒ뉴데일리
    ▲ 대회 마지막 날인 17일 점심시간 신광면 체육회가 마련한 짜장면을 주민들이 맛있게 먹고 있다.ⓒ뉴데일리
    대회 마지막 날인 17일 점심시간에는 신광면 체육회가 마련한 짜장면 나눔행사가 열려 주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행사장에는 짜장면을 받기 위해 수십 미터씩 긴 줄이 늘어서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이날 준비된 짜장면만 1200그릇이 넘었다. 주민들은 함께 식사를 나누며 축구장에서 이어진 열기를 잠시 식히고, 세대와 마을을 넘어 정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지방소멸이라는 단어가 전국 농산촌 지역을 무겁게 짓누르는 현실과 달리 이날 신광면 운동장에는 오랜만에 만난 주민들의 웃음소리와 응원 함성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 같은 공동체의 활력과 달리 신광면에는 주민들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제대로 된 공공운동장이 없다. 73년이라는 긴 역사를 가진 광복친선축구대회조차 지역 중학교 운동장을 빌려 개최해야 하는 상황이다.

    학교 측 시설을 사용하는 만큼 경기장 관리와 시설 훼손 문제 등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고, 주민들은 매년 행사 준비 과정에서 학교와 교육당국의 협조를 구해야 한다.

    더욱이 행사 운영에 필요한 예산도 넉넉하지 않아 신광면 체육회와 지역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부담으로 대회를 이어가는 실정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해마다 ‘지방소멸 대응’과 ‘지역공동체 활성화’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역 인구를 늘리고 청년을 정착시키는 정책도 중요하지만, 이미 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 함께 만나고 소통할 수 있는 생활 기반시설을 갖추는 것 역시 지방소멸 대응의 핵심이다.

    특히 신광면민 광복친선축구대회처럼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70년 넘게 지켜온 역사와 전통은 행정이 새롭게 만들어낼 수 없는 소중한 지역자산이다.

    행사에 참여한 주민들이 마음껏 공을 차고, 아이들이 뛰놀며, 세대가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공간 하나가 지역공동체를 지탱하는 구심점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 ▲ 대회 마지막 날인 17일 만석2리와 토성2리가 결승전 경기를 하고 있다.ⓒ뉴데일리
    ▲ 대회 마지막 날인 17일 만석2리와 토성2리가 결승전 경기를 하고 있다.ⓒ뉴데일리
    김성훈 신광면 체육회장은 “1947년 선조들이 새끼줄을 엮어 만든 공을 차며 광복의 기쁨을 나눴던 전통이 73회째 이어지고 있어 감회가 깊다”며 “안전하고 성숙한 모습으로 대회에 참여해 주신 면민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박용선 포항시장은 “신광면 광복기념 친선축구대회는 포항을 넘어 대한민국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자랑스러운 역사”라며 “선조들의 단합된 힘과 애국심이 앞으로 포항 발전의 원동력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행사 기간 안전관리도 철저하게 이뤄졌다. 포항시와 신광면 체육회는 구급차와 의료인력을 현장에 배치하고 곳곳에 안전관리요원을 배치하는 등 사고 예방에 집중해 3일간 단 한 건의 안전사고 없이 행사를 마무리했다.

    한편, 신광면민 광복친선축구대회는 단순한 축구대회가 아니다. 73년째 이어지는 신광면민들의 축구공이 더 이상 남의 운동장을 빌려 차지 않아도 되는 환경부터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