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과 기록유산의 도시로 거듭나조선 공론 정치의 원형 ‘만인소’,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
  • ▲ 복제개혁반대 만인소(두루마리 상태).ⓒ경주시
    ▲ 복제개혁반대 만인소(두루마리 상태).ⓒ경주시

    경주시는 옥산서원에서 소장하고 있었던 ‘복제개혁 반대 만인소’가 도산서원의 ‘사도세자 추존 만인소’와 함께 ‘만인의 청원, 만인소’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아시아태평양지역 목록(이하 유네스코 아태기록유산)’에 등재됐다.

    지난 5월 29일부터 31일까지에 대한민국 광주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아시아‧태평양 지역 기록유산 총회(MOWCAP)’에서 인류가 기억해야 할 중요 기록물로 ‘만인의 청원, 만인소’를 등재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이로써 경주시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은 석굴암·불국사, 경주역사유적지구, 한국의 역사마을 하회와 양동 등 3건이다.

    이번 등재로 유네스코 아태기록유산이 추가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과 기록유산의 도시로 거듭나게 됐다.

  • ▲ 복제개혁반대 만인소(상소본문 부분).ⓒ경주시
    ▲ 복제개혁반대 만인소(상소본문 부분).ⓒ경주시

    ▲ 조선 공론 정치의 원형, 만인소

    만인소는 조선시대 1만여 명에 달하는 재야 유교 지식인들이 연명해서 왕에게 올린 청원서이다. 만 명이 중요했던 것은 ‘만(萬)이 모든 백성’을 상징하는 숫자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만인소 운동은 1792년 억울하게 죽은 사도세자를 신원해 달라는 청원으로부터 시작됐고 이후 각기 다른 사안들을 가지고 19세기 말까지 총 7차례 진행됐다.

    이번 아태기록유산에 등재된 만인소는 원본이 남아 있는 1855년 사도세자를 왕으로 추존해 달라는 ‘사도세자 추존 만인소’와 1884년 당시 중앙정부에서 진행된 복제 개혁에 반대하는 ‘복제개혁 반대 만인소’ 2점이다.

    이 두 종의 만인소는 각각 도산서원과 옥산서원에서 소장하고 있다가 이번 등재신청을 위해 현재 한국국학진흥원에 대여해 보존하고 있다.

  • ▲ 유교적 실천운동을 상징하는 100여 미터의 기록

    이번 등재과정에서 만인소는 기록물의 형태에 대해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앞에서 밝힌 것처럼 만인소는 청원 내용과 그 청원에 참여한 만여 명의 서명 및 수결로 이뤄진 대형 기록물이다.

     ‘사도세자 추존 만인소’는 10,094명이 연명한 상소로, 폭 1.11m, 길이 96.5m, 무게 16.6kg이다. ‘복제개혁 반대 만인소’는 8,849명이 연명한 상소로, 폭 1.02m, 길이 100.36m, 무게 8.3kg이다.

    이 두 상소의 청원 내용은 다르지만, 유교적 올바름을 실천하려 했던 참여 운동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사도세자 추존만인소’는 정통 왕위 계승자임에도 불구하고 당파 싸움으로 인해 뒤주에 갇혀 불운하게 생을 마친 사도세자를 왕으로 추존해 달라는 내용이다. 당파적 이해관계로 인해 왕통이 올바르게 서 있지 않은 현실을 바로 잡으려 했던 것이다.

    ‘복제개혁 반대 만인소’는 1884년 내려진 복제 개혁에 반대하면서 이 정책에 대한 재고를 청원하는 내용이다. 복제개혁에 대한 반대는 현재적 관점에서 볼 때, 시대에 역행하는 내용일 수 있지만, 유교 이념에서 벗어난 중앙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맥락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