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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의 7주기 추도식에 앞서 부산을 방문한 국민의당 지도부가 PK(부산·경남) 표심을 공략해보려고 했다가 부산 지역 상공인들의 동남권 신공항 전방위 압박에 진땀을 흘렸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박지원 원내대표 등 지도부는 23일 오전 부산상공회의소에서 현장최고위원회의를 연데 이어 상공인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부산상의 관계자들은 회장은 물론 명예회장까지 나서서 동남권 신공항이 부산 가덕도로 결정되는데 국민의당도 힘을 보태라고 십자포화를 날렸다.
조성제 부산상의 회장은 "동남권 신공항 위치는 어떻게 이야기를 안 하는데, 이것은 답이 나와 있는 문제"라며 "24시간 안전하게 운영할 수 있는 공항을 짓는 게 세계적인 추세인데, 정치적인 면을 배제하고 경제성 원칙으로만 한다면 100% 가덕도"라고 잘라 말했다.
신정택 부산상의 명예회장도 소음·안전·수요지라는 측면에서 봐야 한다고 거들고 나섰다. 신정택 명예회장은 "요즘 공항은 밤 10시부터 새벽 2시까지 가장 바쁘게 움직이는 게 추세인데 소음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동남권 신공항은 원래 (지난 2002년 김해국제공항에 착륙하려던) 중국 민항기가 신어산에 추락하면서 논의가 시작된 것이므로 산지에 짓는 것은 안전 문제가 있다"며 "일본은 땅을 메워 국토를 넓히는데 딸기와 고추·깻잎이 많이 나는 밀양의 산을 밀어 공항을 세워야 하는지도 생각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나아가 "정치적인 논리로 '선물보따리를 가져오겠다'고 하는 것은 안 된다"며 "부산시민들과 단체들이 난리인데, 국민의당에서 협조해주면 360만 시민들이 큰 신세를 지는 것"이라고 압박했다.
PK 표심을 공략하러 왔다가 대표적으로 PK 표심이 분열돼 있는 난제에 맞닥뜨린 것이다. PK라고 뭉뚱그려 말해도, 동남권 신공항 문제와 관련해 부산광역시는 가덕도를 지지하는 반면 울산광역시와 경상남도는 밀양을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는 "정부가 정치적 논리로 결정을 늦추지 말고 공정하고 신속하게 진행해야 한다"며 "기준은 국익을 최대화하고 관련 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으며 경제인의 편의성이 극대화되는 방향으로 해야 한다"고 답했다.
박지원 원내대표도 "5개 지자체(부산·대구·울산·경남·경북)가 용역 결과에 따르기로 합의했기 때문에 정치권에서 특정 지역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동남권 신공항이 결정되면 국민의당에서도 예산·행정적 뒷받침을 아끼지 않겠다"고 부연했다.
'원칙론'으로 지역 상공인들의 예봉을 피해간 것이다. 국민의당은 그저 진땀을 흘린 정도지만,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에게는 '빅뱅'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장면이라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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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K와 PK는 모두 전통적인 여권 강세 지역이다. 야당은 동남권 신공항의 결정 결과를 지켜본 뒤 비판하면 그만이지만, 입지를 선정해야 하는 정부와 한몸인 집권여당은 덤터기를 전부 뒤집어써야 할 우려가 있다.
이미 지난 3월 29일 새누리당 조원진 원내수석부대표(당시)가 대구에서 신공항을 가리켜 "박근혜 대통령이 대구에 선물 보따리를 준비하고 있다"고 발언한 것이 부산의 총선 민심에 큰 악영향을 미쳤다는 비판이 많다. 오죽했으면 지금까지 부산상의 명예회장이 그 발언을 잊지 않고 있다가 이날 국민의당 상공인 간담회에서 꼬집었을 정도였겠는가.
특히 서병수 부산광역시장은 신공항의 가덕도 유치 실패시 시장직을 사퇴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어, 내달로 다가온 입지 선정을 앞두고 영남 정치권에 대형 폭탄이 떨어질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지난 2011년 3월 3일 당시 이명박정부가 경남 밀양과 부산 가덕도를 모두 신공항 후보지에서 탈락시키는 사실상의 '백지화' 발표를 한 직후, 영남에서 "MB 탈당" 요구가 불거지는 충격적 사태가 발생했던 적이 있다. 그만큼 집권여당이자 지역 맹주인 새누리당에게 있어서 이 안건이 시한폭탄으로 간주되는 이유다.
동남권 신공항이 새누리당에 가장 부담이 되는 이슈이긴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게도 남의 일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더민주 문재인 전 대표는 지난달 5일 사상에 출마한 배재정 후보의 지원 유세를 하면서 "더민주가 이번 총선에서 부산에서만 5석이 확보된다면 박근혜정부의 임기가 끝나기 전에 신공항을 만들겠다"고 천명했다.
그런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이제 문재인 전 대표를 중심으로 하는 더민주 친노·친문패권 세력은 가덕도 신공항을 위해 움직일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린 것이다.
실제로 그런 방향으로 움직인다면 TK 지역에서 극렬한 반발이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또, 김부겸 당선인과 문재인 전 대표 사이의 야권 잠룡 간의 당내 갈등으로 번질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무소속 홍의락 의원의 더민주 복당 가능성도 0에 가깝게 수렴하게 된다.
물론 사흘 후에 광주 충장로에서 했던 "호남이 지지를 거둔다면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겠다"는 말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지키지 않고 있는 문재인 전 대표이기 때문에 "부산에서 5석을 확보하면 신공항을 만들겠다"는 말도 아랑곳하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이렇게 되면 부산 표심이 이러한 말바꾸기를 가만히 보아넘길 것인지는 의문이다.
한편 지난 17일 대구·울산·경남·경북의 4개 시·도 지자체장은 밀양시청에서 모여 회의를 연 뒤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동남권 신공항에 이해관계를 가지는 지자체 중 부산광역시장만 쏙 빼놓고 모인 것이다.
5개 지자체는 지난해 6월 신공항 위치 결정 용역을 외부 전문기관에 맡기되 유치 경쟁을 하지 말자는 '신사 협정'을 맺었으나, 이는 지난 17일 '밀양 지지 4개 단체장 회동'에 이어 이날 국민의당 부산 지역 상공인 간담회 등을 거치며 이미 깨진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같은 시기 맺어진 "용역 결과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각서 또한 파기 수순을 밟는 게 불보듯 뻔해졌다. 내달말 동남권 신공항 입지 발표가 다가온 가운데, 내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PK와 TK 표심이 요동치는 큰 분란이 야기될 공산이 매우 커졌다는 관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