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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영준 뉴데일리 대구경북본부 기자
“전쟁통도 아닌데 애 우유 하나 사려고 섬 전체를 뒤져야 합니까?”
지난 20일 이후 일주일간 포항~울릉 화물선 운항이 중단되자 울릉도 주민 공모 씨(36)가 터뜨린 일갈이다. 2026년 대한민국, 그중에서도 엄연한 우리 영토인 울릉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비극적인 상황은 오늘날 섬 주민들이 처한 서글픈 자화상이다.
정기검사로 닻을 내린 ‘금광11호’와 기상 악화를 핑계로 세 차례나 출항을 거부한 ‘미래15호’. 이 두 척의 화물선이 멈춰 서자 1만 울릉 주민의 삶은 순식간에 마비됐다. 마트의 신선 식품과 우유는 자취를 감췄고, 소상공인들은 택배 지연에 따른 주문 취소 세례를 견디다 못해 지칠 대로 지쳤다. 그러나 이 아우성 앞에서 선사는 책임 회피에 급급하고, 행정당국은 “법적 근거가 없다”는 앵무새 같은 답변만 되풀이하고 있다.
주민들이 분통을 터뜨리는 이유는 명확하다. 여객선이 정상 운행되고 파고가 1~2m 수준으로 평온했던 날에도 화물선은 뜨지 않았다. 과거 태풍 영향권에서도 파도를 가르던 그 기개는 온데간데없다. 결국 속내는 ‘돈’이다. 금광해운은 상대 선사 탓을 하고, 미래해운은 ‘적자 구조’와 ‘보조금’을 운운한다.
사실상 주민들의 생필품 보급로를 볼모로 잡고 정부와 지자체를 향해 돈 보따리를 풀어달라는 무언의 압박이자 비겁한 ‘기싸움’이다. 화물 운송이 신고제라는 제도적 허점을 악용해 정기 운항 의무를 저버린 선사의 행태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커녕 최소한의 상도의마저 저버린 처사다. 더욱 기가 차는 것은 포항지방해양수산청과 울릉군의 태도다. “강제할 법적 규정이 없다”, “소통 외엔 뾰족한 대책이 없다”는 이들의 해명은 전형적인 탁상행정의 표본이다. 만약 육지의 도로가 일주일간 끊겼다면 정부가 이토록 평온했겠는가.
섬 주민들에게 화물선은 단순한 운송 수단이 아니라 생존과 직결된 ‘해상 도로’다. 도로가 파손되면 긴급 복구에 나서는 것이 국가의 의무이듯, 해상 물류가 끊겼다면 즉각적인 대체 수송 수단을 마련하거나 선사를 압박할 비상 대책을 가동했어야 마땅하다. 법령이 미비하다면 조례를 만들어서라도 주민의 생존권을 수호하는 것이 지자체와 지방의회의 존재 이유다.
우유 한 팩을 사기 위해 섬을 헤매고, 택배가 오지 않아 생업을 포기해야 하는 현실은 2026년 대한민국의 수치다. 선사의 파렴치한 ‘배짱 휴항’과 당국의 ‘나 몰라라’ 행정이 계속되는 한, 울릉 주민들에게 겨울은 매년 반복되는 재앙일 뿐이다. 정부와 울릉군은 지금 당장 법적 근거 타령을 멈추고 주민의 생존권 사수에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