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조 연간에 예조 정랑(정5품의 실무관리)이었던 이복휴가 독도에 영토비를 세우자고 건의한 기사를 찾아냈다고 경북도가 10일 밝혔다.
경상북도는 경북도 독도사료연구회(회장, 염정섭 한림대 교수)가 2019년 연구회 과제 수행 중에 새롭게 사료를 발굴했다며 기사에는 우산도를 ‘울릉외도(蔚陵外島)’라 칭했으며 이복휴가 우산도에 영토비를 세워 우리 땅임을 증명하자고 건의 한 것이다.
이번에 새로이 발굴한 사료는 승정원일기와 일성록정조 17년(1793년) 10월 1일자 기사로, 기사에는 우산도를 ‘울릉외도(蔚陵外島)’라 칭했으며 이복휴가 우산도에 영토비를 세워 우리 땅임을 증명하자고 건의 한 것이다.
연구회 소속 유미림 박사(한아문화연구소장)는 이복휴가 말한 ‘울릉외도’는 오늘날의 독도를 가리킨다는 것이다. 먼저 여기에 보이는 우산국은 ‘동국문헌비고(1770)’에서 울릉도와 우산도 모두 우산국 땅이라고 기록한 것을 근거로 작성한 것으로 보았다.
또 마쓰시마(松島)는 당시 일본인들이 우산도를 부르는 호칭이었으며, ‘울릉외도’가 바로 ‘松島’라고 했으므로 ‘울릉외도=松島=우산도’라는 공식이 성립한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정조는 영토비 건립 제안을 수용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수토제가 정착돼 울릉도 및 속도에 대한 영유권이 확립돼 있었다고 인식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한편, 경북도 독도사료연구회는 지난 2010년에 발족하여 2018년까지 9년간 일본사료 21편을 번역·출판했고, 금년부터 국내사료 번역을 시작했다.
서장환 경북도 독도정책과장은 “이번 사료는 조선의 왕(정조)과 관료가 우산 즉 독도의 존재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음을 보여 주는 것”이라며 “이로써 최근 이영훈 교수가 조선왕조는 독도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했다고 지적한 내용을 전면 반박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